15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1교시 국어영역에 제시된 필적확인 문구.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
수험생 긴장 낮춰주고 따뜻한 위로글 눈길
[헤럴드경제=조현아 기자] ‘06학번‘ 이전 세대는 모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답안지 작성 절차가 있다.
‘필적 확인 문구‘인데,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대신 시험을 치는 대리시험을 막기 위해 수험생 당사자인지 알고자 답안지에 적은 글씨체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같은 절차는 2006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지난 2005년에 처음 도입돼 올해까지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 수능 본인 확인 문구는 긴장되고 경직된 수험생들의 마음을 달래고 힘을 주는 시구(詩句)를 골라 제시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올 수험생의 위로글이 무얼까’ 하는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올 문구는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2019년 수능이 치러진 15일, 올해의 수능 본인 확인 글은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다.
이는 김남조 시인의 시(詩) ‘편지’의 첫 구절로,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달려온 수험생들의 노력을 위로하는 글로 보여 세심한 배려가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어떤 글들이 수험생들이 답안지에 쓰는 첫 문장이자 따뜻한 위로가 됐을까?
해마다 이슈가 됐던 필적 확인 문구 모음. [출처=각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
이는 직전 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2004년 11월 17일 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답안을 전송하는가 하면, 대리시험 치르는 등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하자 ‘부끄럼 없이 시험을 치르라’는 의미에서 채택됐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주옥같은 국민 애창 시구들 등장=이후 국민들의 애창시이자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아름다운 시구들이 해마다 하나씩 수능 문제지에 나와 수험생들의 손끝에서 쓰였다.
이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등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 시를 외우던 소년소녀 시절의 풋풋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주옥 같은 시구들이다.
이 밖에도 수능일 시험지에 올라온 문구는 아니지만 화제가 됐던 문구로는 “넌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테니까”(박치성의 ‘봄이에게’ㆍ2017년 3월 고3 모의고사)와 “햇빛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핥고 있다”(한수산 소설 ‘유민’ㆍ2013년 6월 고 1ㆍ2 모의고사),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이 없다”(정호승의 세월호 추모시 제목ㆍ2015년 8월 모의고사), “그대, 참 괜찮은 사람. 함께라 더 좋은 사람”(용혜원 시일부 인용ㆍ2016년 7월 고3 모의고사), “아름다운 네 모습 잃지 않았으면” 등이 있다.
▶윤동주 시 최다, 정지용의 ‘향수’는 2번 선정=지난 13년 동안 ‘그동안 공부한 것을 잘 풀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떨고 있을 수험생들의 감성을 어루만지고 훈훈하게 감싸주는 필적 확인 문구에는 윤동주의 시가 3번이나 나놨고, 정지용의 시 ‘향수’는 두 차례나 선정됐다.
▶모의고사ㆍ수능 등 출제위원 19자 이내 선정=필적 확인 문구는 어떻게 정해질까? 모의고사나 수능 문제지에 나오는 필적 확인 문구는 각 출제위원이 토의를 통해 19자 이내의 길이로 문학작품을 참고해 정하기도 하고 창작하기도 한다. 시험 이후 수험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하며 많은 공감과 위로, 재미 등의 후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5일 광주 서구 화정동 광주여자고등학교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수험생이 시험시작을 기다리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필적 확인 절차가 도입된 것은 지난 2004년 11월 17일 실시된 2005학년도 수능에서 전국적으로 수많은 수험생이 대리시험 등의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돼 이를 막고자 강화 차원에서 시작됐다.
또한 휴대전화도 이때부터 시험 전 일괄 수거했다가 시험이 끝나면 되돌려주고 있다.
역대 필적 확인 수능 문구는 다음과 같다.
▷2006학년도(2005년 시행) 윤동주의 ‘서시’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2007학년도(2006년 시행) 정지용의 ‘향수’ 중 ‘넓은 벌 동쪽 끝으로’
▷2008학년도(2007년 시행) 윤동주의 ‘소년’ 중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2009학년도(2008년 시행)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중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2010학년도(2009년 시행)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2011학년도(2010년 시행) 정채봉의 ‘첫 마음’ 중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2012학년도(2011년 시행)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중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2013학년도(2012년 시행) 정한모의 ‘가을에’ 중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2014학년도(2013년 시행) 박정만의 ‘작은 연가’ 중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2015학년도(2014년 시행) 문태주의 ‘돌의 배’ 중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2016학년도(2015년 시행) 주요한의 ‘청년이여 노래하라’ 중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2017학년도(2016년 시행) 정지용의 ‘향수’ 중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2018학년도(2017년 시행) 김영랑의 ‘바다로 가자’ 중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였다.
▷2019학년도(2018년 시행) 김남조의 ‘편지’ 중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jo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