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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리선권 발언 진위파악, 안하나 못하나
리선권<사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무례한 언사가 논란이 된 지 벌써 10일째가 됐지만, 당정청 모두 아직도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발을 빼고 있다.

리 위원장 관련 논란은 지난달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리 위원장이 우리 측 재계 인사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갑니까’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4일에는 리 위원장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향해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는 독설에 가까운 농담을 했다는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이후 문재인 정권의 최대 국정 과제인 한반도 평화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과 굴욕적인 외교에 대한 불만이 급속도로 퍼졌고, 국민과 여론은 당정청의 즉각적이고 정확한 해명을 기다렸다.

국민의 기다림과 달리 당정청은 구체적은 해명은 커녕 사실관계 확인조차 못 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오히려 이를 궁금해하는 여론을 다그치며 북한을 감싸는 모양새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 정책위의장은 해당 발언이 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본질을 흐리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사실이라면 사과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번 평양 방문은 모든 사람이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그렇기에 큰 흐름 속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비슷한 이야기를 보고받았다”고 했다가 사흘 뒤 “공식 경로가 아니라 건너 건너 얼핏 들었다”며 입장을 바꿔 혼란을 가중시켰다. 정부가 저자세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맥락, 배경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한 사람 발언에 대한 추측만으로 남북관계 전반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적절치 않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했던 북한의 환대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리 위원장의 발언은 사실관계가 현재로서는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며 “맥락에 따라 비난이 칭찬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을 해 견강부회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사실 관계 확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재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김태년 정책위의장과 관련된 발언은 그가 스스로 밝히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 맞다.

홍 원내대표가 박용만 상공회의소 회장과 재벌총수 3~4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런 일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재계가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입맛에 맞는 답을 내놨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야권은 “홍영표 원내대표가 반협박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고, 민주당도 “사실이 아니다”고 확정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

분단 70년 동안 남북은 휴전이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김대중 정권 당시 역사에 남을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북에 수많은 물자를 지원했지만 돌아온 건 2년 후 연평해전이었다. 또 노무현 정권 당시 북한은 9.19 공동성명을 통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파기한다고 약속했지만 뒤로는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수많은 굴곡 속에서 북한의 화전양면술에 지친 국민에게 리 위원장의 발언은 당정청이 바라는 것처럼 쉽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냉면을 넘기듯 쉽게 지나칠 수 없다는 말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 국민 역시 그런 북한의 행태를 기억하기에 리 위원장의 발언에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당정청의 태도는 국민의 불안감만 키우는 꼴이다. 문재인 정권이 노력해온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대외 협상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도 반드시 필요하다. 투트랙 전략 구사가 필요한 시점에서 지금같은 태도로 국민의 믿음과 지지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이제라도 정확한 해명과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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