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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나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방영된 tvN <꽃보다 할배>에서 새로 출연한 김용건은 만 72세로 여기 출연한 다른 어르신들 중 막내다. 맏형인 이순재와 둘째인 신구는 팔순을 넘겼고, 박근형과 백일섭은 칠순이다. 사실 칠순을 넘어 팔순에 도달한 이 어르신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한다는 건 이색적이다. 지금의 중년들이라면 청춘시절을 보냈던 90년대에 배낭여행은 마치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여행’처럼 여겨졌었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이제는 칠순, 팔순의 어르신들이 걸어간다.

물론 체력이나 건강이 젊은 세대의 그것과 비교해 조금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여행을 통해 느끼는 것이나 배우는 것이 새롭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경험이 더해져 그 여행은 이들에게 더 깊은 깨달음이나 즐거움을 남긴다. 이순재는 여전히 지적인 호기심이 왕성하고, 신구는 감성적으로 그 곳의 문화를 느끼려 한다. 박근형은 여전히 청춘의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백일섭은 함께 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막내로 새로 들어온 김용건은 유머가 힘겨울 수도 있는 여행이나 삶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가를 보여준다.

<꽃보다 할배>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의 삶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때는 환갑을 넘기면 노인이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환갑잔치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어르신들이 많아지고 있다. 체력적으로나 평균수명으로 보나 환갑은 아직 중년이라 여기는 생각들이 일반화되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미 들어선 고령화 사회에서 과연 어르신들의 실제 삶은 어떨까.

‘2018 고령자 통계’에 의하면 OECD국가 중 우리나라의 70-74세 노인 고용률이 무려 33.1%로 압도적인 1위라고 한다. 그런데 암울하게 다가오는 건 노인 빈곤률도 무려 49.9%로 OECD국가 중 단연 1위라는 점이다. 이 지표가 말해주는 건 노인들이 하는 경제활동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일하지 않고는 먹고 살 수 없는 게 우리나라의 노인들이 처한 현실이라는 것. 이런 현실에 처한 어르신들에게 <꽃보다 할배> 같은 여행은 그래서 도달할 수 없어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껴지는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노인들의 노동현장을 들여다보면 그 현실이 얼마나 팍팍한 지 실감할 수 있다. 가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그 삶이 너무나 곤궁했다. 금융기관을 다니다 명예퇴직하고 택시운전을 하는 어르신은 첫 월급 110만원을 받았던 걸 잊지 못했다. 84세의 연세에 택배기사 일을 하는 어르신은 일주일에 6일을 일하고 고작 50만원이 수입이었고, 75세에 노인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어르신은 한달 수입이 20여만 원이라고 했다. 이분들이라고 여행을 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일해야만 하는 현실이란다.

코엔 형제가 만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는 내용과 달리 종종 노인복지 관련 이야기에 그 제목이 자주 쓰인다. 2030년에는 우리나라 어르신의 비율이 전체의 4분의 1에 육박할거라고 한다. 생존하기 위해 일하는 노인들의 일자리 문제. 평생을 쌓아온 아까운 경력들이 단절되고 험한 육체노동에 내몰리는 건 우리 사회 전체를 두고 봐도 손실이 아닐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아니어도 노인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나라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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