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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 감경사유 논란] 음주·우울증에 형 감경…법개정 가능할까
이름과 나이 등 신상과 얼굴이 전격 공개된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 피살사건 피의자 김성수(29).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전국 성인 502명 대상 조사
‘음주범죄 감경 폐지해야’ 80%


최근 사회적으로 충격을 던진 살인 등 강력사건과 음주운전 사망 사고를 계기로 그동안 논란이 일었던 심신미약 감경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일반인의 법 감정에 맞게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일부 사례를 들어 법을 고칠 경우 형사 처벌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

25일을 기준으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우울증이라는 이유로 심신미약 감경을 해선 안 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현역 군인이 숨지자 음주운전을 엄벌하고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을 해선 안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5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음주 범죄는 감형이 아니라 가중처벌 대상이므로 (음주 감경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80.0%로 집계됐다.

음주나 약물, 정신장애 등에 따른 심신미약 감경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형법 10조 1항과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변별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사람이 범행을 저지르면 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하도록 했다. 범죄를 예견하고 심신장애를 스스로 의도한 경우에만 예외가 적용된다. 만취나 정신장애로 인해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러도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되면 형이 줄어든다는 점이 국민 법 감정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에 한해서는 음주 감경이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8살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조 씨가 당시 만취 상태였다며 법원이 징역 12년을 선고하자 공분이 일었다. 국회는 2013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해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성범죄 전문 한 변호사는 “강제 조항은 아니지만 법 개정 이후 심신미약 인정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성범죄 뿐만 아니라 모든 강력 범죄에서 판사가 심신미약 감경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팀장은 “심신미약을 인정하면 형의 범위 자체를 조정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다른 양형인자보다 심신미약을 우선시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사안에 따라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였더라도 감경을 안 할 수도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ㆍ프랑스 등은 술이나 약물 등에 취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오히려 가중 처벌하는 ‘명정죄’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런 주장이 우리 법 원칙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우리 형법은 범죄를 책임질 능력이 있는 자만 벌할 수 있다는 ‘책임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판단력을 상실하거나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범한 행위와 같은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PC방 살인사건은 심신미약이 인정될 가능성이 극히 적은데, 잘못된 사례를 근거로 원칙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며 “누구나 아차하면 범죄자가 될 수 있는데 (법을 개정하면) 처벌과잉으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감정을 위해 입원한 피의자나 피고인은 464명으로, 2014년 610명에 비해 크게 줄었다. 올해 9월까지는 302명으로 집계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형사정책연구원은 최근 업무협약(MOU)을 맺고 다음달 19일 학술대회를 열어 ‘음주로 인한 양형의 감경 또는 가중의 제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논의 결과에 따라 심신미약 감경을 특별양형인자에서 일반양형인자로 변경하는 방식의 개선도 가능하다. 일반양형인자로 지위가 낮아질 경우 심신미약이 피고인의 형량에 미치는 영향력이 기존보다 줄어든다. 

유은수 기자/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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