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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에서도 숨어 살아요”…복지 사각지대 놓인 ‘노숙女’
지난 7월 11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공원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이곳에서 생활한지 15년이 넘었다고 했다. 정세희 기자/say@

여성노숙인 1만여명…전체 26%
대부분 지적장애·정신질환 앓아
사람 피해 화장실·지하도서 생활

“가정·학교·시설 등서 버림받아
공동체 등 사회적 관심 절실”


노숙인 김주영(가명ㆍ39) 씨를 처음 만난 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 있는 공중화장실에서였다. 지난 달 10일 오후 2시께 여행가방 1개와 옷가지 등으로 가득 찬 쇼핑백을 들고 나타난 김 씨는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에서 발을 씻었다. 이후 화장실 두번 째 칸에 들어가서 3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었다.

공원관계자가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냐”고 119를 불러주겠다고 해서야 김 씨는 부스스한 상태로 나왔다. 이곳은 그의 ‘숙소’였다.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나온 김 씨는 여의도 공원 인근 횡단보도 앞에서 한동안 멍하게 서있었다. 갈 곳을 찾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밥 한끼를 청했다. 순식간에 돌솥비빔밥 한 그릇을 비워낸 그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쏟아냈다.

올해 서른 아홉인 김 씨는 원래 영어학원 강사였다고 했다. 검게 탄 피부에 일어난 각질과 피부염,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 매무새 탓인지 마흔은 훨씬 넘어 보였다. 그는 “10여년 전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뒤 가진 돈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영어강사였다던 그가 어쩌다가 거리 생활을 하게 됐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려웠다.

김 씨는 대화를 시작한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거나 질문을 다시 되물었다. 눈도 불편한 듯 계속 찡그렸다. 그는 “쪽방촌에 있었는데 최근엔 잘 곳이 없어졌다”면서 “며칠 째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라고 했다. 김 씨가 공원의 공중화장실을 찾은 이유였다. 낮시간 비교적 사람이 적은 공원화장실은 잠을 청하기에 꽤 좋은 장소였다. 비를 피할 수 있고 112안심구역이라 안전하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7월 10일부터 약 2주간 서울 영등포 일대에 거리에서 여성 노숙인을 만나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여성 노숙인은 전체 1만1340명 중 26%에 달한다. 남성에 비해 적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여성 노숙인들은 더 많다. 여성 노숙인들은 공중화장실, 지하 상가, 인근 공원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사회복지사는 “여성 노숙인들은 단체 생활을 피하고 홀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등포역 인근 공원 벤치에서 만난 김진주(가명ㆍ46) 씨는 노숙 생활 15년 째다. 주변에서는 그를 ‘누님’이라고 부른다. 주변 사람들은 “건들면 화내는 무서운 누님”이라고 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홀로 이 곳에서 보낸 뒤 해가 떨어지면 무료 급식소를 찾고, 백화점에서 씻고 난 뒤 다시 이곳에서 잠을 청한다. 역근처에 다른 노숙인들이 많지만 그곳은 가지 않는다. “말 안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기자가 들고 있던 휴대폰에 관심을 보이던 김 씨는 드라마를 보여주자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드라마 본지 오래 됐다”고 했다. 최근 드라마는 물론 올해가 몇 년도인지도 알지 못했다. 원래부터 거리에서 지냈다는 그에게 가족이나 친구는 없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성 노숙인들에 비해 여성 노숙인들은 지적장애,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성 노숙인이 실직, 이혼 및 가족 해체, 알코올 중독 등 다양한 이유로 노숙을 시작하게 되는 것과 달리 여성 노숙인들은 대부분이 장애나 정신질환를 갖고 있었다.

서울시가 노숙인을 성별로 나눠 조사한 ‘서울시 노숙인 정책의 성별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노숙인은 경제적 어려움(46%)뿐만 아니라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정신질환에 의한 갈등을 포함한 가족문제(43%)로 노숙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부터 노숙을 시작한 이효정(가명) 씨도 지적 장애를 갖고 있다. 그는 특수학교에 다녔지만 학교 수업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주 학교를 빠졌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던 집에서는 아이를 치료하거나 교육할 여력이 없었다. 가족들은 아이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효정 씨는 병원에서도 뛰쳐나와 아직까지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채 노숙인이 됐다는 것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물론 학교와 시설에서 여러번 버림을 받았음을 의미했다.

이민규 옹달샘상담보호센터 생활지원팀 사회복지사는 “여성 노숙인들은 장애를 가진 경우도 많을 뿐만 아니라 외부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발견하는 즉시 일시보호시설에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리에서 1000여명의 노숙인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 단 사람만 있어도 노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들을 지지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나 사회복지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희ㆍ박이담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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