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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탐색]“일찍 집에 가봤자…” 폭염ㆍ열대야에도 방황하는 4050
해가 떨어져도 푹푹 찌는 열대야 퇴근길, 일찌감치 퇴근하는 직장인들 가운데 김 씨처럼 회사 근처에서 방황하는 4050대들이 눈에 띄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집이 더 더워…약속없어도 곧바로 귀가 안해”
-회사 근처서 수다…카페서 혼자 시간 보내기도
-“아내ㆍ자녀들과 대화방법 몰라 소외” 하소연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7시. 긴 하루가 끝나고 모두가 더위를 피해 귀가를 서두를 때였다. 서울 영등포구의 증권회사에 다니는 김재환(가명ㆍ48) 씨는 옆 회사 직원들과 번개를 잡았다. 모두 40~50대였다. 그들은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금연 스티커가 붙은 회색 건물 벽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잠깐 담배만 태우고 간다는 게 30분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찾은 게 편의점. 잠깐 목만 축이고 가자고 했지만 맥주 캔은 쌓여갔다. 초열대야에 바깥 공기가 34도를 오르내렸지만 개의치않았다. 칼퇴하고도 곧바로 집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김 씨는 “집이 더 덥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고 아내랑 대화도 즐겁지 않다. 일찍 집 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해가 떨어져도 푹푹 찌는 열대야 퇴근길, 일찌감치 퇴근하는 직장인들 가운데 김 씨처럼 회사 근처에서 방황하는 4050대들이 눈에 띄었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거리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일찍 집에 가는 게 낯설다고 했다. 집으로 향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가정에서의 소외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 증권회사 앞에서 홀로 벤치에서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고있던 이모(53) 씨는 “바람을 쐬고 있다”고 했다. 퇴근한지는 1시간이 넘었다고 했다. 그의 와이셔츠는 땀이 흥건했다. 열대야에 바람은 덥고 습했다. 별 다른 저녁 약속도 없이 집에 못 가고 있는 이유를 묻자 “집에 가서 할 게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대학생인 딸은 어학연수를 갔고, 아들은 군대에 갔는데 집이 휑해 외롭다. 20년을 저녁을 밖에서 먹었는데 일찍 가면 마누라 눈치 보인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 4050대 가장의 불안,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5년간 공황장애, 조울증, 불안장애, 우울증 환자수 현황’자료에 따르면, 공황장애 환자 비율은 40대(25.4%)에 이어 50대(21.7%)가 가장 많았고, 불안장애 환자는 50대(20.8%)에 이어 60대(18.1%), 40대(16.7%)로 40∼60대 환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우울증은 50대(18.7%)에 이어 60대(18.3%), 70대(17.0%)로 50대 이상 환자가 대부분(61%)를 차지했다.

외로움과 노후에 대한 불안감에 짓눌려 “더운 날엔 집이 최고”가 아닌 이들에게 역대급 무더위도 일찍 귀가할만한 유인이 되지 못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장모(54) 씨는 최근 퇴근 후 습관처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회사도 더워서 시원한 곳에서 잠깐 땀을 식힌다는 게 목적이었지만, 사실 은퇴를 앞두고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털어놨다. 요즘 열대야에 에어컨 쐰다고 자녀들이 거실에 나와 있는데 불편했다는 하소연도 했다. 그는 “애들이 언제 그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외롭더라. 엄마랑은 얘기도 잘하는데 점점 혼자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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