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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사생활부터 노조동향까지”…경찰 사찰문건에 드러난 ‘불법 정보활동’ 정황
경찰의 청와대 보고 문건 속 사찰 정황

-직무감찰과 상관없는 개인 사생활 다수 포함
-야권 정치인 ‘라인’ 정리…지방선거 표 언급도
-“정치적 목적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찰 내용”

[헤럴드경제=강문규ㆍ유오상 기자]경찰의 사찰 문건에서 드러난 정보경찰의 활동 내용은 경찰이 그간 주장해온 정상적인 치안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야당 소속 정치인에 집중된 사찰 내용부터 직무와 관련 없는 개인 사생활, 민간인과 노조에 대한 사찰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1일 <헤럴드경제>가 복수의 전ㆍ현직 경찰과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입수한 문건 속에는 정보경찰의 정당한 직무라고 보기는 어려운 불법 사찰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의 사찰 내용이 담긴 문건에는 ‘공직사회 감찰’이라는 명분과 달리 감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민간인 사찰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문건에는 한 지방의회 관계자에 대해 “취임 이후 다수 여성들과 불륜을 하고 있다”며 상대방 여성의 이름과 나이, 거주지와 직장까지 자세히 기록했다. 이들이 주로 만나는 장소 등이 자세히 언급됐고, 공직 감찰과는 전혀 상관없는 불륜 대상의 배우자 직업까지도 조사했다. 사실상 민간인 사찰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현직 언론인과 지역의 민간 협회장, 일반 기업의 노조 동향도 문건에 거론됐다.

당시 사찰 정보 보고에 참여했던 한 일선 정보경찰 관계자는 “지역 유력 인사의 동향 보고를 확인하는 것은 정보경찰 본연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한 지역 시장의 사찰 내용이 보고될 당시 시청에 파견돼 정보 업무를 했던 그는 “경찰에게도 공직감찰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며 “군이나 국정원 등 다른 정보기관이 했다면 문제겠지만, 경찰의 경우에는 정당한 업무로 봐야 한다” 말했다. 그러나 문건 내용을 확인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직감찰이라는 명분을 이용해 사실상 불법 사찰을 해왔다는 증거”라며 “직무와 관련도 없고 범죄도 아닌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민간인 사찰까지 해가며 자세히 정보를 수집한 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에 언급된 한 지역 교육감에 대해서는 “전교조 출신이라 전교조 전임 복귀자의 징계 수위를 일부러 낮췄다”는 내용의 보고와 함께 전교조 출신 직원에 대한 사찰 내용이 포함됐다. 한 지자체와 관련, 전국공무원노조 내부 게시판 글을 그대로 첨부하거나 주의 사항으로 “일부 공무원들이 전공노를 호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견을 달기도 했다.

문건 내용을 확인한 한 지역 노조 관계자는 “공공기관에 상시 출입하는 정보경찰이 노조 관계자와 만날 일이 많기 때문에 내부에서 나오는 얘기를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는 생각했었다”면서도 “내부 게시판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상부에 보고해왔던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노조 등을 사찰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내용”이라며 “정말 문제가 있다면 수사를 해야 할 일인데, 이를 단순히 정보 권력으로만 활용한 것 같아 충격”이라고 덧붙였다.


유력 야당 정치인들의 이른바 ‘라인’ 보고도 빠지지 않았다. 다른 야당 소속 지방 시장과 관련해 “시장의 라인만 승진과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며 시장의 측근 공무원들의 명단을 만들었다. 또 다른 야당 소속 지방 시장에 대해서도 “특정 산악회가 시장의 사조직처럼 여겨지고 있다”며 “이들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정치적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입수한 문건에 드러난 정치인 30여명 중 대다수는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고,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은 4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특정 성향의 정치인들을 골라 사찰 정보를 만든 정황에 대해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역의 유력 인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경찰 본연의 임무로 볼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특정 당 소속 정치인들만을 대상으로 사찰했다면 불법 사찰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문건에 드러난 사찰 정보 중에는 불법 정보 수집을 짐작케 해 불법 소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손동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의 정보수집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내부 게시판 사찰이나 불법 정보 수집의 정황이 있다면 이를 경찰의 정당한 직무수행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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