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윤의 묘 [사진=전쟁기념관] |
-한성 판윤 아들, 주러대사 동생 이범윤 선생
-간도관리사 파견 뒤 연추의병부대 이끌어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전쟁기념관은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의병부대를 이끈 이범윤(1856.5~1940.10) 선생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856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 등을 지낸 이경하의 아들, 주러공사 등을 지낸 이범진의 동생이다.
조선 말 선생은 간도관리사로 파견됐다. 당시 간도에는 한인 농민 7만여명이 거주했다. 이들 농민과 ‘사포대(私砲隊)’를 조직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힘썼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사포대를 이끌고 러시아군과 함께 반일 군사작전에 참가했다. 이듬해 연해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연추(러시아 노보키예프스크)를 활동 기지 삼아 항일단체인 ‘창의회(彰義會)’를 결성해 이른바 연추의병부대(이범윤 의병부대)를 이끈다.
이 의병부대에는 안중근 의사도 우영장(참모중장)으로 참여했다.
이범윤 의병부대는 1908년 7월부터 9월까지 두만강 유역에서 수차례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했다.
1911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권업회(勸業會)’ 총재로 추대됐다. 권업회는 유인석이 수총재, 최재형과 최봉준이 부총재, 이상설이 의장, 홍범도가 경찰부장으로 구성된 전 노령(露領: 러시아 시베리아 일대) 최대 최고의 한인기관이었다.
1919년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의군부’를 조직해 총재를 맡았고 1921년에는 대한독립군에 참여했다.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 ‘신민부’ 조직 당시 참의원장에 추대되어 성동무관학교를 설립해 무관 양성에도 힘썼다.
이후에도 일생을 항일운동에 헌신하다가 1940년 10월 20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내달 2일 오후 2시 유족과 유관단체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를 거행한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