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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노회찬 빈소이기에 가능했던 근조화환
[헤럴드경제 TAPAS=구민정 기자] 흔히 사람들은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의 규모를 보고 고인 삶의 값어치를 매기곤 한다. “역시 덕을 많이 쌓으신분이라 가시는 길 외롭진 않겠어.” “인복 하나는 많았지 그 양반이”



24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의원 빈소 앞에 조문객들이 줄지어 서있다.




아직 ‘고(故)’란 관형사를 붙이기도 어색한 노회찬 의원 장례식장의 풍경도 그러했다.



2018년 7월 24일 화요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4°C가 웃도는 더위에 땀에 흠뻑 젖은 티셔츠를 입은, 손풍기를 쐬는 시민들이 특1실 앞으로 줄지어 섰다. 줄이 너무 길어 현장의 관계자들도 조문객들에게 “뒤에 온 다른 분들이랑 같이 절하셔도 괜찮겠냐”며 연신 양해를 구했다.

조문을 기다리면서 눈에 띄던 것이 근조 화환들이었다. 고인 삶의 값어치를 매기는 또 다른 도구. 문재인 대통령부터 사회 각계각층의 ‘높으신 분’들의 이름이 적힌 화환이 으리으리하게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어떤 근조화환들은 ‘노회찬 의원 빈소이기에 놓일 수 있는’ 이름의 것들이었다.

타파스는 노 의원실로부터 24일 오전까지 빈소에 접수된 근조화환 발신인 목록을 받아 살펴봤다. ‘경남청년유니온’에서 시작해 400개에 가까운 근조화환 및 근조기 발신자들. 이를 통해 생전 수많은 노동자와 소수자를 위해 살아온 고인의 발자취를 읽을 수 있었다. 그 중 일부를 고인이 남긴 언행과 함께 정리해봤다.







발신인: 인민노련사람들



노 의원은 1973년 입학한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군 제대 후인 1979년에 스물넷 나이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뒤늦게 입학한 고인은 용접 기술을 배우게 된다. 조용히 공부만 하지 않았다. 노동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던 그의 삶의 궤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동료들과 인민노련을 만들었다. 인민노련은 1986년부터 인천, 부천 등 경인 지역에서 일하던 위장 취업자들이 함께 만든 투쟁 단체로 한국 최대의 지하조직이었다. 노 의원은 이곳에서 조직부장과 기관지 『사회주의자』 편집위원 등을 맡아 인민노련을 이끌었다. 당국의 수배가 내려졌고 1989년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체포돼 1992년까지 옥살이를 하게된다.



“사회주의 혁명조직이란 건 당시 검찰이 붙인 표현이고 87년 전두환 독재 하에서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찾는 노동운동에 종사한 분들의 조직이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도 받은 일이지요.” - 고(故) 노회찬 의원



인민노련이 발행한 ‘정세와 실천’.




발신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장애인선수위원회 유도선수 대표 정정호, (사)인천지체장애인협회 안병옥,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홍순봉, 장애여성공감



석방 이후 노 의원은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다. 평생 진보정당 운동에 헌신한 고인은 소수자 문제에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도 “뭐..좋아하지 않습니다”했던 동성애자와 성소수자와의 연대에 적극 나섰다. 17대 국회의원 당시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과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당시 성전환자들은 호적상 성별을 바꿀 수 없었고 따라서 결혼과 가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각종 불이익과 차별을 겪고 있었다. 이에 노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성전환자들에게 일정한 요건 아래 성별의 변경을 인정하고 성별 변경과 관련한 개인의 정보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관계자는 “고인은 성소수자를 뜻하는 ‘이반’과 연대하는 비성소수자란 의미에서 자신을 ‘삼반’으로 칭하기도 했다”며 “노 원내대표와의 연대를 소중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또 국회의원으로서 장애인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실질적인 법안 마련을 위해서도 원내에서 힘썼다.

2005년 민주노동당 의원 시절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장애인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한 게 시작이었다. 이어 선거방송 수어 방영 의무화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장애인 관광권 활성화를 위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등 장애인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는 “노회찬 의원은 장애인의 권리 쟁취,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함께 저항하고 싸웠던 의원”이라며 “그것이 정치이고,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라고 밝혔다.





생전 사회 각계 소수자들을 위해 힘썼던 노회찬 의원. [제공=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발신인: 박중훈, JTBC 썰전팀, 박노해 시인

노동운동가이자 국회의원으로 삶은 채워온 고인. ‘엄단진’하지만은 않았다.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의 현장 속에서도 재치와 뼈 있는 농담을 잊지 않은 진정한 자유인이요 문화인이자 평화인이었다. 수많은 예술인과 관련 단체들의 애도가 이어진 이유다.

배우 박중훈의 화환도 자리를 잡았다. 그는 평소 노 의원을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 2008년, 2012년 총선 유세뿐만 아니라 노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도와주기도 했다.



“사람의 그릇은 위기일 때 가늠할 수 있다. 노회찬 형님이 지난 18대 총선에서 떨어지고 난 다음 보여준 행동들은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다. 전혀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항상 국민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정치인의 참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너무나 감동스럽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과거 노회찬 의원 출판기념회 축하 영상에서 배우 박중훈



노 의원이 지난 2012년 총선 후보였을 당시 유세를 도운 배우 박중훈. [출처=노회찬 의원 공식홈페이지]




“한나라당, 민주당 의원님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이제 저희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이제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합니다.“

- 2004년 17대 총선 당시 KBS 심야토론 방송에서




”우리나라랑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2012년 19대 총선 당시 SBS 시사토론에서 정옥임 전 새누리당 의원이 야권연대를 비판하자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른가?“

- 2013년 ‘삼성 X파일’ 사건 폭로로 대법원에서 징역형 확정판결 받고서



쉬운 말로 현상의 핵심을 꿰뚫는 입담으로 노 의원은 수많은 TV토론 방송에서 촌철살인 달변가로 떠올랐다. 최근엔 현역의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JTBC 썰전에 논객으로 출연해 ‘매주 선보이는 촌철살인’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276회부터 278회까지, 세 번째 방송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됐다.



[출처=JTBC 썰전 TV화면 캡쳐]




어릴 적부터 첼로를 배워 한때 ‘첼로 켜는 정치인’으로 불리기도 했던 노회찬 의원. 그는 말의 즐거움과 음악의 풍부함, 그리고 사람과의 부대낌을 즐기던 진정한 문화인이었다.



박노해 시인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화환띠에 새기며 고인을 추모했다.

‘눈물로 씨 뿌려온 그대 정의의 길은 남아’



노회찬 의원실에서 제공한 근조화환 발신인 목록. 24일 오전까지 총 365개의 근조화환이나 근조기가 빈소에 놓였다.



korean.g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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