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ㆍ재무부ㆍ국토안보부, 합동 ‘대북제재 주의보’ 발령 -美국무부 부차관보 대행, 한미 대북정책 조율차 내일 방한 -정부, 곧 안보리 대북제재위에 유예 요청…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 차원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대북제재 주의보’를 발령했다. 여기에 국무부 한국과장인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대북제재에 대한 미국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내일 방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리 정부는 8ㆍ15 남북 이산가족 상봉 성사를 위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면제를 요청할 방침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을 둘러싼 선후관계를 놓고 북미간 이견이 좁히지 않자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견인 수단으로 ‘제재국면 재확인’카드를 꺼냈다. 미 국무부는 23일(현지시간)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 이민세관단속국(ICE)과 함께 17쪽 분량의 ‘북한 제재 및 단속 조치 주의보’를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무역과 노동력 파견 분야에서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기만적인 수법을 소개하고 각국 기업과 개인의 주의를 당부했다. 북한이 제3국 업체의 하도급을 받아 물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식의 불법무역을 벌여 이 과정에서 통보받지 못한 바이어 또는 주문자가 제재대상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설명도 담았다. 사례로는 북한기업이 중국 업체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의류용 자수를 생산하는 경우가 제시됐다. 미국 정부는 특히 농업, 애니메이션, 제지, IT, 부동산 개발 등 37개 분야에 걸친 북한의 합작기업 239개 명단을 별첨하고, 사실상 이들 기업과의 거래하지 말라고도 권고했다. 보고서는 “제재 리스트는 아니지만 일부 기업은 제재대상에 이미 올랐으며, 일부는 제재대상 지정 기준에 부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의 이번 조치는 지난 20일과 22일 북한이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을 시작한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이뤄져 눈길을 끈다. 북미 대화국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제재 완화를 주장과 북한의 제재 회피 움직임 전면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공약을 신뢰하고 관계개선에 힘쓴다면서도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북한에 공급되는 정제유 규모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가 지정한 연간 50만 배럴을 초과했다며 전면적인 공급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3월 게재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통해 북한산 석탄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정황이 최근 확인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8ㆍ15 광복절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에 제재 면제를 요청하는 작업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르면 내주나 내달 초 안보리 대북제재위에 북한과의 대화협력을 위한 제한적 제재면제를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가이드라인 제11항 등에 따르면 제재 면제요청은 예정여행일 및 면제가 필요한 시점으로부터 최소 10일 이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안보리 대북제재위는 최소 5일의 숙고시간을 통해 면제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특수한 경우 대북제재위 의장국이 면제여부를 결정하는 기한 날짜를 정할 수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개성 연락사무소 개설 등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로서 다른 나라에서 얘기하는 제재 완화하고는 성격이 다르다”며 “남북 대화와 교류를 위해 사용되는 물자에 대한 제재 면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보리 결의 2397호 25항에 명시된 예외조항은 북한 내 주민들의 인권보호 등을 위한 인도주의 활동까지 제재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으며, 대북제재위가 사안 별 사안(case-by-case)로 어떤 사안이든 면제할 수 있다는 문구 또한 ‘관련 기구’(such organization)나 ‘대북 제재 결의안들의 목적과 일관된 목적을 추구할 때’(any other purpose consistent with the objectives of these resolutions)라는 전제조건을 달했다. 또, 2397호의 27항은 유엔 안보리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평화적이고 외교적이며, 정치적 해법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추구하며, 대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법을 마련하고자 하는 모든 국가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은 오는 25일 방한해 한국 측 당국자들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 계기 이뤄질 제재면제와 남북교류 동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대북정책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램버트 부차관보 대행은 김태진 외교부 북미국장, 정연두 북핵외교기획단장 등과 만나 한미동맹 현안과 북핵협상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램버트 대행은 대북경협에 관여하는 한국 기업관계자들과도 만나 남북경협에 영향을 주는 대북제재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설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소식통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나 연락사무소 개관을 위한 유엔 안보리 제재면제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북한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경협이 추진되면 비핵화 견인을 위한 제재국면이 약화된다는 우려가 미 조야에 만연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