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경비원은 12시간을 일한다.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던 지난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건물 청소원 김연자(가명ㆍ59) 씨는 쉬기 위해 화장실 가장자리 칸에 들어갔다. 그는 물기묻은 대걸레 두 자루, 걸레를 빠는 빨래판이 놓인 1평도 채 안 되는 이 작은 공간에서 한숨을 돌려야만 한다. 이 곳 화장실은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가만히 있어도 덥고 습한데, 변기를 닦고 휴지통을 비우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김 씨는 화장실 칸에 들어가 선풍기를 튼다. 이곳에서 그는 땀을 식히고 휴대전화로 뉴스도 보고 간식을 먹는다고 했다. 좁은 곳에서 덥지 않느냐고 하자 김 씨는 “보이는 그대로다”라고 짧게 답했다. 선풍기 바람이 끈적했다.

이곳 청소원 대부분은 화장실에서 쉰다. 지하주차장 옆에 별도의 휴게공간이 있지만 정식 휴게시간인 오후 12시부터 1시반까지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와 함께 일하는 청소관리직원은 “요즘 같이 더운 날에 화장실은 찜질방만큼 덥지만 어쩔 수 없다. 건물이 오래된 탓이 아니겠느냐”고 체념한 듯 말했다.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에 첫 폭염특보가 내린 이날 에어컨이 사치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선풍기 바람에 겨우 의지하며 무방비상태로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길거리 가판대에서 일하는 77세 장연자 할머니는 교통비만 겨우 버는 상황에서 에어컨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발을 뻗을 수도 없는 공간에 무더운 공기가 가득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선풍기만 겨우 틀어놨다. 너무 더우면 잠깐 나와 그늘에 앉아있다가 다시 들어가는 식이었다.

하루 종일 선풍기를 틀면 전기료가 얼마나 나오냐고 묻자,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전기요금 통지서를 내밀며 몇 년 전 TV를 끊었는데 전기요금 고지서에 TV 수신료 요금이 찍혀있는 게 이상하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몇 천원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그에게 에어컨 얘기는 더 이상 꺼낼 수 없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경비원은 12시간을 일한다.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같은 시각, 용산구의 한 아파트의 경비원 강모(62) 씨는 에어컨 대신 물수건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1평짜리 작은 경비실에는 냉장고를 넣을 공간도 없어 물을 마시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요 며칠 열대야에 잠을 못 잔 탓에 몹시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는 “경비원들은 보통 아파트 노인정 휴게실 바닥에서 잠을 잔다. 요즘 같은 날 밤에 눈을 붙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무더위 속 아파트 단지를 계속 순찰해야 하는 이들에게 시원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필수적이이다. 그러나 용산구 아파트 경비원 노모(76) 씨는 주민들에게 에어컨을 설치해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원 1명당 세대수가 적어서 내야 되는 돈이 많다고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름이면 정말 너무 덥지만 이제 그러려니 참는다. 그래도 너무 더울 때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는 야외작업 안 하도록 해줬다”고 씁쓸히 웃었다.

정세희 기자ㆍ성기윤 수습기자/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