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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못드는 파출소-①여의도 여름파출소]몰카ㆍ성추행 등 ‘한강의 불금’…“자살시도자 신고에 가슴 쿵”
지난 13일 이태웅(22) 의경이 여의도 한강공원 인근의 화장실에서 불법촬영단속에 나서고 있는 모습. [박이담 수습기자/parkidam@heraldcorp.com]

-“숨 돌릴 틈 없다”…여름파출소 ‘바쁜 여름나기’
-절도범 검거ㆍ자살시도자 상담 등 1인 다역
-“사건 해결하면 뿌듯…직원들은 불면의 금요일”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ㆍ박이담 수습기자]“실례하겠습니다. 경찰관입니다. 비상벨이 울려서 확인차 들어갑니다.”

지난 13일 오후 11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인근의 화장실. 불법촬영탐지기를 든 여의도 여름파출소 김성진(33) 순경과 이태웅(22) 의경이 여자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불법촬영 단속에 나선 것이었지만 경찰은 ‘비상벨이 울렸다’는 등 명분을 대고 들어간다. 시민들이 놀라거나 걱정할 것을 대비한 조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탐지기로 화장실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다행히 불법촬영기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여름파출소의 모습. [박이담 수습기자/parkidam@heraldcorp.com]

지난달 30일 문을 연 여의도 여름파출소는 한강 주변을 따라 만들어진 임시파출소 5곳 중 한 곳으로 매년 여름 두 달간 운영된다. 여름동안 하루 평균 2만2000여 명, 주말이면 최대 4만명에 달하는 여의도 한강공원 방문객들의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여름파출소는 공원 인근에 컨테이너 박스 하나에 임시로 차려졌지만 접수되는 신고 유형은 주취폭력, 절도, 성추행 등 다른 파출소 못지 않다. 게다가 매일 불법촬영 단속까지 벌이면서 업무량이 많아졌다.

김 순경은 “불법촬영에 대한 우려가 최근 커진 만큼 매일 불법촬영 단속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불법촬영 단속을 마치기 무섭게 사건 하나가 접수됐다. 한 여성의 남편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 경찰관들도 긴장의 연속이다. 이들에게 전달된 정보는 남편의 이름, 전화번호, 인상착의, 그리고 그가 여의도 한강공원 근처에 있다는 것 뿐이었다. 홍동규(48) 경사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을 거부했다. 우선 근처를 순찰하며 그를 찾기 시작했다. 사건이 접수된 지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 서강대교 근처에서 소주를 마시던 한 남성을 발견했다. 아내가 찾던 바로 그 남편이었다. 홍 경사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여긴 위험하니까 파출소 가셔서 커피나 한 잔 하자. 가족이 걱정한다”며 그를 설득했다. 그는 눈물을 닦으며 순순히 홍 경사를 따라갔다. 파출소에서 그와 면담을 가진 홍 경사는 “안 좋은 마음은 이해한다. 뭐라고 말해도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일단은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며 그를 연신 위로하고 설득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하지 못했다. 자해 가능성에 대비해 한 의경은 보호자가 올 때까지 그를 계속 지켜봤다.

지난 3년 간 여름파출소에서 자살시도사건을 자주 다뤘다는 홍 경사는 “이 분은 그나마 협조적인 분이다. 자살시도자가 술 취한 채 욕하고 떼쓰면 훨씬 힘들어진다”며 “특히 인적사항까지 파악이 안되면 후속조치가 어려워 말로 계속 설득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여름파출소에 도착한 경찰과학수사대 수사관이 버려진 물건에서 절도범의 지문을 수집하고 있다. [박이담 수습기자/parkidam@heraldcorp.com]

오전 1시께 또 다른 신고가 들어왔다. 한강공원 인근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노트북이 든 가방을 도난당했다는 것. 주변 CCTV를 확인한 결과 자전거를 탄 사람이 노트북 가방을 들고 달아난 것이 확인됐다. 김 순경은 곧바로 순찰 중이던 동료에게 검은색 노트북 가방을 가지고 있는 자전거객을 찾아달라는 무전을 보냈다. 현장에선 범인이 노트북 가방에서 꺼내어 버린 콘텍트렌즈통이 발견됐다. 곧이어 도착한 경찰과학수사대 수사관은 렌즈통에 묻은 범인의 지문을 수집했다.

분실자 홍모(29) 씨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관이 사건 경위를 상세히 묻고 렌즈통까지 증거물로 확보하는 등 친절하게 대응해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도난 당한 지 40분 후에서야 경찰에 신고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홍 경사는 “피크닉객들이 돗자리에 짐을 두고 여기저기 왔다갔다할 때 그 틈을 노리는 절도범이 있다”며 시민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오전 2시께 가방 절도 사건을 마무리할 찰나 또 다른 신고가 들어와 출동에 나섰다. 여의도 여름파출소 경찰들에게 ‘불금’은 그저 ‘불면의 금요일’이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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