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점심의 사회학 ② - 본지 수습기자 ‘노량진 점심’ 체험기] 공시족에 점심은 ‘맛보다 영양공급’…1분1초 아까워 ‘혼자 후딱’
컵밥ㆍ혼밥 등 ‘속도전 푸드’가 발달한 노량진. 양과 영양이 중요할 뿐 맛은 사치다. 노량진의 점심시간은 말 그대로 ‘마음에 점 하나(點心)’ 찍을 찰나에 지나간다. 이곳에서 점심은 오후를 위한 전투식량을 섭취하는 짧은 ‘보급시간’이다.

“공부하려면 단백질 공급이 중요하잖아요.” 지난 4일 노량진의 한 ‘혼고기’(혼자 고기 먹는 식당) 식당에서 만난 공시생 윤모(30ㆍ영등포구) 씨는 혼밥 중 최고난도라는 ‘혼고기’를 가벼운 보쌈 메뉴로 도전했다. 1인용 좌석에 앉아 정갈한 보쌈을 집어드는 폼새가 고독한 미식가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에게 보쌈은 ‘단백질 공급원‘일 뿐이다.

윤 씨에겐 불판 위에 올라간 고기를 앞에 두고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도 당분간은 사치다. 무인주문기로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그는 요약정리집을 펼쳐놓은 채 꼭꼭 씹어먹었다. 30여명이 손님이 오가는 동안 혼밥러가 아닌 손님은 단 한팀 뿐이었다. 대화소리 없이 음악만 흐르는 조용한 식당에선 고기 씹는 소리가 가장 크다.

반면 노량진 명물 컵밥거리에선 가장 시끄러운 혼밥 풍경이 펼쳐진다. 불판 위에 음식 볶는 소리, 메뉴를 주문하는 사람들 말소리가 음식냄새에 섞여 퍼져나간다.

“단기간 합격이 목표에요”. 지난 5일 컵밥거리에서 만난 공시생 윤모(32ㆍ양천구) 씨는 뒤늦게 경찰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며 새로운 꿈을 꾼다. 그는 “시간을 아끼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요. 이제 시험이 2개월 남아서 막판 스퍼트를 올리러 노량진으로 오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쏜살같이 달려와 삼겹살김치덮밥을 해치운 그는 타고 온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금새 사라졌다.

수많은 노량진 먹거리를 제쳐두고 편의점 음식으로 점심 한끼를 때우는 이들도 있다. 시험이 두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점심 시간 1분 1초가 천금 같은 시간이 됐다. 이날 편의점은 늦은 점심시간까지 수험생으로 북적였다. 가게 안 의자와 테이블의 주인은 몇분새 바뀌고 또 바뀌었다.

삭막한 분위기,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공간이지만 한번 대화의 물꼬를 트면 깊숙히 숨겨뒀던 이곳 청춘들의 속내가 금새 열린다. 이날 점심메뉴로 삼각김밥 세트를 선택한 공시생 박상진(24ㆍ동대문구) 씨는 “앉아서 공부만 하니까 몸이 쳐지는 것 같아서 닭가슴살을 주문했는데 아직 택배가 안와서 삼각김밥 먹으러 왔어요”라며 웃었다.

이제 노량진 입성 한달이 된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고독이다.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빨리 붙으려면 모여서 술 마시러 다니면 안 되잖아요. 스터디에서만 대화 많이하고 평상시에는 혼자서 공부하고 혼자 밥 먹어요.”라고 말하는 박 씨의 얼굴에선 다부진 각오가 엿보였다.

노량진을 채우고 있는 젊은이의 목표는 도전과 합격이다. 외로움을 참고 피곤함을 참고 그리움을 참는 건 내일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량진의 한 끼’는 처량하지 않다.

김유진 기자ㆍ박이담 수습기자/kacew@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