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내자식 주홍글씨 안돼” 학폭싸고 소송전
기록남으면 대학입시에 치명타
징계에 불복 재심 청구 급증
그래도 안되면 법정으로…
일부선 “변호사 등 전문가에…”


서울 영등포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A 군은 지난해 같은 동네에 살던 고등학생 B 양한테 지속적인 폭언을 들었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같은 반 친구와 다툼이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 친구의 누나인 B 양이 문자와 SNS 메신저를 통해 지속적으로 욕설과 협박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계속된 폭언을 참지 못한 A 군이 문자 내역을 들고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양쪽 학교는 지난해 9월 공동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까지 열어 사안을 논의했다. 자치위원회 논의 결과, 결국 B 양이 하급생을 향해 폭언을 반복했다는 점이 인정됐다. 위원회는 B양에게 피해학생에 대한 접촉금지 처분과 함께 교내 봉사 5일을 명령했다.

그러나 위원회의 조치로 일단락될 것 같았던 문제는 최근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뒤집혔다. B 양이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게 되자 부모가 변호사를 선임해 “자치위원 중 한 명이 절차상 잘못 선임됐다”며 처분 자체가 무효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13부(부장 유진현)은 지난 5월 “문제가 된 위원이 학부모 대표는 맞지만, 자치위원으로 선출된 것은 아니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가 있다”며 “잘못 선출된 위원회의 결정도 무효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학교 측은 “위원 한 명의 자격 문제 탓에 학교폭력 위반 사항을 무효로 할 수는 없다”고 맞섰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판결이 확정되면서 B 양의 징계기록은 모두 무효가 됐고, 피해자인 A 군에 대한 접근금지 처분도 함께 무효가 됐다.

이처럼 학교폭력으로 인한 징계 처분에 불복해 재심 등을 청구하는 경우는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서만 학폭위 재심 신청건수는 지난 2014년 88건에서 지난해 158건으로 3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재심 결과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까지 간 경우도 지난해 35건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징계 처분을 받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징계 기록을 없애줄 수 있다”며 광고하는 일부 변호사도 있다. 대부분 징계처분을 내리는 위원들의 자격을 문제삼아 처분을 무효로 만든다.

학부모 대표 등으로 구성돼 있는 위원회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거나 현실적으로 까다로운 선임 절차를 지키지 못해 소송의 빌미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기록이 평생 남아 대입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학부모들을 소송전까지 몰고 가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경미한 사안조차 빨간 낙인으로 남아 대입에 영향을 주는 현 제도하에서는 학부모가 무리하게 소송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며 “현실적인 학교폭력 대책이 마련돼야 불필요한 소송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사와 학부모가 중심이 돼 처리하고 있는 체제에서 벗어나 변호사와 의료 전문가 등 전문가들이 학교폭력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에 설치해 처리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법안 통과에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