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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늘어나는 ‘길맥’, 어떻게 좀 안 돼요?
[헤럴드경제 TAPAS=나은정 기자] “술 마시지 말라고 현수막까지 걸린 데서 왜 그렇게 술을 마셔대는 거예요?”

최근 2030 사이에서 ‘길맥(길에서 마시는 맥주)’의 성지로 떠오른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경의선숲길. 연남동의 센트럴파크라 하여 ‘연트럴파크’로 불리며 시민들을 끌어모은 이곳은 사실 서울시가 지정한 ‘음주청정지역’이다.



음주청정지역에서는 술을 마시고 심한 소음이나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하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공원 한 가운데엔 이런 사실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떡하니 걸려있지만, 연트럴파크에 모인 이들은 아랑곳 않고 술판을 벌인다. “몰랐다” “다들 마시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라는 말과 함께. 


음주 가능한 음주청정지역

이곳뿐만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특별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 시행하면서 올해 1월 1일부터 서울숲ㆍ남산ㆍ월드컵공원ㆍ여의도공원 등 서울시 직영공원 22곳을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음주청정지역이라는 공원 곳곳에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음주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서다. 애초에 서울시가 제정한 조례엔 음주청정지역 내에서 ‘금주’를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 금주하도록 권고할 뿐이다. 과태료를 부과하는 기준도 ‘술을 마신 자’가 아니라 ‘음주해서 소음 및 악취가 나게 하는 등 혐오감을 준 자’에 한한다. 하지만 소음이나 악취 등 혐오감을 주는 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지난 4월 1일 단속이 실시된 이래 단 한 번도 과태료가 부과된 적이 없다.


노상 음주는 편의점이 최고?

음주청정지역에서의 음주는 불법이 아니지만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의 음주는 엄연히 불법이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면 식품위생법(‘휴게음식점’인 편의점에서는 간편조리 음식만 섭취할 수 있고 음주는 불가능하다)과 도로교통법(교통에 방해가 되는 물건을 도로에 두면 안 된다)에 따라 업주가 영업허가 취소와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주들이 단속 때만 테이블을 없앴다가 다시 설치하는 등 제멋대로 운영하고 있어 아직도 많은 이들이 불법인 줄 모르고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관할 지자체에서는 늘 단속 인력이 부족해 제재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요즘 대세는 규제라는데

2015년 기준 국내에서 일어난 범죄 4건 중 1건(26.4%)은 주취자에 의한 것일 정도로 음주로 인한 폐해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처럼 길거리 음주 자체를 금지해 달라거나 음주 단속을 더욱 강력하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전면 금지시켜 달라”, “주취자의 범죄행위에 대해 가중처벌을 바란다”는 등 음주 규제와 관련한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해외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음주행위 자체를 금지하거나 주류 판매를 전문판매점에서만 가능하게 하는 등 규제가 엄격하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개봉한 술병을 들고다니면 1000달러(약 110만원)의 벌금 또는 6개월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 캐나다는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술 판매가 금지돼 있어 정부의 허가를 받은 주류 판매점에서만 술을 살 수 있으며,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거나 술병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최고 230캐나다달러(약 19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프랑스에선 술에 취한 상태로 공공장소를 활보하다 적발되면 구금되거나 150유로(약 19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고, 역시 공공장소에서 음주가 금지된 호주에선 취해서 난동을 부리면 최고 1100호주달러(약 91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터키에서는 2013년부터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주류를 판매할 수 없게 했고, 싱가포르에서도 2015년부터 오후 10시 30분에서 오전 7시 사이에는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및 허가업체 이외에서의 주류 판매를 금지했다. 같은 아시아권인 베트남에서는 최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 시간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 데 이어 공공장소와 TV에서 맥주 광고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음주에 대한 엄격한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다. 


음주 규제, 안 하는 거니 못 하는 거니


하지만 2018년의 대한민국은 아직 대세를 못 따라가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보육시설ㆍ유치원 및 초ㆍ중ㆍ고등학교 50미터 범위 내의 주류광고 및 인터넷을 통한 주류광고 금지 ▲학교, 관공서, 대중교통수단에 주류광고 금지 ▲만 24세 이하 주류 광고 출연 금지 ▲알코올 15도 이상 주류의 판매용 용기에 경고사진 부착 ▲초ㆍ중ㆍ고등학교 및 대학교에 주류 반입 금지 ▲누구든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공공장소에서 음주 금지 등 음주 및 주류 광고에 관한 규제 법안이 십여 개 발의됐으나 줄줄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자체가 조례로 금주구역을 지정하고 지정된 금주구역에서 주류를 판매하거나 음주를 금지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년 6개월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과 2015년 공공장소에서의 음주와 주류 판매 금지 정책을 추진했다가 국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지금까지 이렇다할 금주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언제 어디서 술을 마시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다만 개인의 음주가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건 명백히 범죄다. 점점 더 심해지는 ‘주폭’ 범죄에 강력한 처벌을 외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공원에서 술판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언제 어디서 술을 마시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다만 개인의 음주가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그건 명백히 범죄다. 점점 더 심해지는 ‘주폭’ 범죄에는 “강력하게 처벌하자”고 외치면서도, ‘내가 공원에서 맥주를 즐기는 건 낭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건 어폐다. 공원에서 웃고 떠들면서 술먹는 내모습이 지나가는 그 동네 아이들에게는 위협의 대상일 수도 있다.

‘안전한 생활’, ‘쾌적한 삶의 환경’은 결국 불편함을 얼마나 감수하고 참느냐에서 온다. 대가없는 안전과 여유는 없다.

/better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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