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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서서히 드러나는 ‘디테일의 악마’와 ‘조율자’ 문재인
“2개월이든 6개월이든 그것에 대해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으려 한다”

‘디테일의 악마’가 조금씩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당초 6ㆍ12 북미정상회담 다음주에 열릴 것으로 관측됐던 후속협상은 진척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 지 아직 2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비핵화는 핵ㆍ미사일 의심시설 신고에서부터 검증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점과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2020년 마무리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휴지모드에 들어간 모양새다. 남북대화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 남북 적십자회담 등 각종 실무회담이 이어지고 있는 한편,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당국의 움직임은 철저히 ‘로우키’(low key)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8~19일 비핵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검증’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크리스토퍼 포드 미 국무부 비확산ㆍ군축 차관보가 방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본지의 문의에 “북핵문제와 관련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짤막하게 답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밝혔듯 북핵문제는 비단 북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문제이다. 북핵문제가 한반도 정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비확산체계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미대화의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수행한 이후 조율자(arbitrator)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쉽다.

북한 비핵화 과정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다소 분리해서 바라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강 장관은 취임 1주년 기념 내신기자간담회에서 ‘비확산 레짐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핵문제도 적대관계가 아닌 관계정상화의 과정을 거쳐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정부입장인가’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검토를 하면서 정부 입장을 정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우리나라는 비핵화 레짐에 있어 상당히 모범적 국가”라고 답했다.

핵심은 우리 정부의 NPT 준수여부가 아니다. 지난 1993년 북한이 NPT 체제를 역사상 처음으로 탈퇴하면서 1970년 발효 이래 국제안보질서의 중추역할을 해온 이 체제는 유용성 논란에 휘말리게 됐다. 그런 점에서 북한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우리 정부입장은 곧 NPT 체제에 대한 정부입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북미대화를 촉진하는 것은 북핵문제를 양자외교 문제로 바라보는 접근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모멘텀이 북미대화 성사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해결을 위한 과정은 다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NPT체제는 완벽하지 않지만 국제사회가 나름 국제안보 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마련한 차선의 체계이다. NPT체제의 당사국으로서, 그리고 북핵문제의 당사국으로서 우리는 북한과 미국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필요에 따라 미국과 북한에 양보를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

‘디테일의 악마’가 부각될수록 우리는 조율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북미간 비핵화 협상은 신고에서부터 검증까지 기술적인 절차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결렬됐다.

기술적 비핵화에 대한 시간이 더 필요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정권 이후 비핵화 모멘텀을 지속시킬 방안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북한 측에는 조속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에 따라 북한 핵ㆍ미사일 시설과 주한미군 기지를 상호사찰을 제안하는 과감함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경로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운전수가 아닌, 교통 안전과 승객 만족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경로를 제안할 수 있는 운전수가 된 문재인 정부를 기대해본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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