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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탐색]‘학교주변 공사 4곳’ 병들어가는 은평초 아이들…시공사ㆍ구청은 뒷짐
- 물청소 해주겠다던 시공사 “증거 없다” 발뺌
- 흙먼지 날리는데 구청은 ‘먼지 없는 날’ 홍보
- 학부모 “아이들 건강 문제 대책 마련” 호소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 서울 은평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한 학부모는 며칠 전 수업시간에 아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이가 “숨을 못 쉬겠다”고 했다. 병원에선 알러지성 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학부모는 “건강하던 아이가 병원에서 한 달치 약을 받았는데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다 내 탓 인 것 같아 미안했다”고 속상해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역 삼거리에 있는 서울 은평초등학교 학생들이 최근 학교 주변 4군데서 재개발 공사가 진행된 이후 기관지염, 비염, 알러지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들이 앓자 학부모들의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다.
마스크를 낀 은평초 아이들이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지난 8일 오전 은평초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녹번역 재개발 공사현장 앞에서 건강권과 학습권 보장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신수연 비대위원장은 “공사가 시작된 후 각종 흙먼지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소음 때문에 수업시간에 집중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어머니는 “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아이들 건강을 위해서 먼지를 처리해달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올해 초부터 시공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구청에 민원을 넣는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달걀로 바위치기’였다. 

서울 은평초등학교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8일 녹번역 재개발 공사현장앞에서 학습권 보장을 촉구하는 9번째 집회를 열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학교 측은 지난 가을 시공사를 상대로 ‘한 달에 한번 물청소를 하고 분진으로 훼손된 건물을 페인트칠 해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엔 “알겠다”고 했던 시공사 측은 “증거가 없다”며 이를 미루고 있다. 이에 대해 시공사 관계자는 “9월 입주를 앞둔 곳은 소음이 발생하고 있지 않다. 민원을 받아들여 불편함 없이 처리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자체적으로 ‘호흡기 및 이비인후과로 보건실 방문한 아동’ 대한 통계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자료에 따르면 공사가 시작된 2015년 호흡기 질환으로 보건실을 방문한 아이들의 비율은 9.66%로 전년(7.76%)에 비해 확연히 늘었다. 학교 정문 재개발 공사가 시작된 올해만 해도 호흡기 질환으로 보건실을 찾은 아이들이 140명이 넘는다. 문명근 교장은 “텅 빈 운동장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한창 뛰어 놀아야 할 때 먼지와 소음 때문에 교실에만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은평초 후문 앞 재개발 공사 장 앞. 큰 덤프 트럭이 지나가고 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시공사가 움직이지 않자 학부모들은 구청을 찾았다. 땅 파는 소리,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심한 날 구청관계자를 찾아가 학교 주변 소음을 측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구청 관계자는 “공문을 보내야 한다”며 몇 시간 뒤에야 현장을 찾았다. 현장을 찾았을 때는 소음이 잠잠해진 뒤였다.

여전히 공사현장엔 흙먼지가 날리고 있었지만, 구청에선 공사현장 벽면에 ‘매주 수요일 먼지 발생 없는 날 운영’이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학부모들은 “말로만 먼지를 없애겠다고 해놓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꼬집었다.

논란이 커지자 구청관계자는 “당시 다른 민원을 처리하다 보니 곧바로 현장에 나가지 못했다. 앞으로 재개발사업장의 살수차 3대를 동원해 1일 3회 등ㆍ하교시간 노선 도로에 살수를 실시하고, 학교 주변 철거작업을 자제하도록 행정지도를 수시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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