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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심은 무화과…열매 따러 꼭 다시 와!” 경찰관, 자살기도 여고생과 나무심은 사연
“아파트 10층 난간에 여자가 걸터앉아있어요.”

지난달 18일 오후 1시 50분께 누군가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신고를 받은 서울 대치지구대 2팀은 곧장 강남구 대치동의 해당 아파트로 출동했다. 알고 보니 자살을 시도하려는 여성은 고등학생 A 양으로 전날 “친구가 자살하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실종됐다”는 또 다른 신고 내용의 주인공이었다. 지구대는 전날 A 양을 찾지 못해 행방을 알 수 없는 터였다.

2팀의 박용진(27) 경장 등 2명은 곧장 해당 아파트에 도착해 10층까지 달려 올라갔다. 그러나 신고자의 말과 달리 아파트 난간엔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 김훤국(53·사진) 경위 등 다른 직원들은 아파트 주위를 수색했다. 근처 PC방까지 확인하고 나온 김 경위는 우연히 아파트 근처에서 한 여학생을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A 양임을 안 김 경위는 천천히 다가가 학년과 나이를 물었다. 그러나 답변이 예상하던 바와 다르자 김 경위는 A 양의 신원을 재확인하고자 무전기를 들었다. 그 순간 여학생은 도망쳤다. A 양 다른 학년과 이름을 말하고선 달아난 것이다. 김 경위가 곧장 A 양을 쫓아가면서 아파트 단지 내에선 예상치 못한 추격전이 벌어졌다. 김 경위가 400m 넘게 달린 끝에 겨우 A 양을 붙잡았다. 당시 A 양 팔에는 자신의 이름, 연락처, 학교 등이 적혀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 이후 자신의 신원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지구대 직원들은 A양을 우선 진정시키기 위해 지구대로 데려왔다.

A 양이 이틀째 굶었다는 것을 알게 된 박찬엽 2팀장은 우선 A 양에게 햄버거를 쥐어줬다. 배부터 채운 후 진정시키자는 판단이었다. 이어 지구대 주위를 함께 산책하면서 자신의 딸 이야기, 대학 이야기 등을 하며 조금씩 A 양의 맘의 문을 열었다. 극단적인 결심을 생각한 이유도 부진한 학교 성적과 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뭔가 작은 삶의 목표를 가져 위험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판단한 박 팀장은 당일 옥상에서 직원들과 심기로 한 무화과나무를 떠올렸다. 옥상에 A 양을 데리고 간 직원들은 A 양이 직접 나무를 심도록 했다. 이어 “나중에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꼭 따러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삶의 의지를 놓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A 양의 얼굴엔 조금씩 미소가 피어났다.

A 양이 무사히 집에 돌아간 이후에도 A 양의 어머니에게 직접 연락해 딸의 상태를 확인한 김 경위는 “막 태어난 꽃과 같은 아이가 학업이나 부모 문제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며 “우리 딸과 나이도 비슷해 딸처럼 여겨져 A 양에게 언제든지 지구대에 놀러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 경장도 “현장에서 막 붙잡았을 때 뭔가 좌절하는 듯한 아이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며 “조장이 상황을 잘 이끌어주고 모든 직원들이 합심한 덕분에 아이를 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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