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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한강로2가 224번지의 비극…도시재생 아닌 재개발의 저주
서울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2번 출구를 나와 100여m 걷다보면 왼편에 녹색 철제 펜스를 두른 주차장이 하나 나온다. 누가 일러주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고 말 정도로 평범한 이 땅은 2009년 ‘용산참사’가 있었던 남일당 빌딩 부지, 한강로2가 224-1번지다. 이듬해 건물이 철거되고 빈 땅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용산참사는 ‘국제빌딩주변 4구역’의 재개발 사업을 위해 한겨울 새벽에 철거민들을 몰아내려다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다. 당장이라도 재개발할 것처럼 군사작전식으로 사람들을 내쫓더니, 2011년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에 사업이 어그러져버렸다. 2016년에야 겨우 사업이 재개돼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남일당 빌딩이 있던 자리는 주변 부지와 합쳐 ‘용산 파크웨이(가칭)’라는 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용산 건물 붕괴 현장에서 뒷수습이 한창이다. 바로 오른편 파란지붕 가건물과 주차장이 있는 자리는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 건물 부지다.
남일당 빌딩 바로 옆 자리인 한강로2가 224-2번지에서 지난 주말 또 한번의 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3일 폭삭 주저앉아버린 4층 건물이 바로 이 땅에 있다. 이 곳 역시 공원 부지로 활용이 예정된 곳이다.

사고가 나자 야권 서울시장 후보들은 ‘도시재생’ 정책에 책임을 묻고 있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는 “서울시가 노후주택ㆍ재개발ㆍ재건축 지역에 대한 안전진단을 자꾸 지연시켜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도 “박원순 후보가 지금까지 해온 도시재생사업이 바깥에 페인트칠하고 환경미화 수준이라 곳곳에 문제가 많다”며 “합리적인 재건축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후보가 재임 기간 300여곳의 재개발 정비구역을 해제하고, 대신 도시재생을 추진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당 건물이 있는 곳은 ‘국제빌딩주변 5구역’으로 도시재생이 아닌 철거형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이다. 이곳의 사업 이력을 보면 애초에 무리하게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던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국제빌딩주변 지역은 지난 2006년 5개 구역으로 나뉘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 그 중 5구역은 면적이 작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두 개로 나뉘어져 있고, 부지 모양도 삼각형이어서 사업성이 좋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연히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조합은 처음에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다가, 2010년에는 오피스 빌딩을 지어 팔겠다고 방향을 틀었다. 2013년에는 의료관광호텔을 짓겠다고 바꿨고, 최근에는 다시 주상복합을 추진 중이다. 최근 시공사 입찰을 진행했지만, 사업성이 나쁜지 어떤 건설사도 응찰하지 않았다.

국제빌딩주변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도. 5구역은 2개 부지(녹색으로 칠해진 구역)로 나뉘어 있으며, 위쪽 부지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 것이 이번에 붕괴한 건물이다.

사업이 10년 넘게 지체되는 와중에도 조합원들은 ‘조만간 재개발이 되겠지’하는 희망고문에 건물을 사실상 방치했다. 곧 철거할 건물을 굳이 돈 들여서 안전을 진단하고, 수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비단 이 건물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재개발 사업지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남일당 건물이 강제 철거되고도 여전히 빈 땅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어떠한 교훈도 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뒤늦게 정비구역으로 지정된지 오래됐는데도 관리처분인가를 받지 못한 사업장의 노후 건축물의 안전진단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번에 붕괴된 용산 건물처럼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0년이 넘은 건물은 182개에 달한다고 한다. 섣부른 재개발 기대에 위험을 방치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부로 구역 지정을 한 뒤 사업 추진을 조합의 일로만 떠넘겨 둔 채 수수방관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p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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