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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스토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경제개혁 투사?…대학땐 시위 한번 안해본 범생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난 과격 개혁론자 아닌 합리적 경제학자
비용·손익 비교분석해 이익 크고 지속가능한 제도·방향 만들어 갈 것”


“임기가 끝나면 학교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도 캠퍼스의 자유로운 공기가 그립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주말이면 각종 자료를 싸들고 한성대에 있는 자신의 교수 연구실을 찾는다. 서울에 공정위 사무실이 있긴 하지만, 자신을 수행하기 위해 사무실에 나와야 하는 직원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본지와의 대담 차 만난 김 위원장에게 위계와 격식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관(官)의 옷은 취임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썩 어울려 보이진 않았다. 사실 지난 20여년간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로서 국가경제와 대기업에 쓴소리를 쏟아내던 그가 서슬퍼런 ‘경제검찰’의 수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사람중심 경제’의 기치를 내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호 인사다. 때문일까. 인터뷰 내내 김 위원장의 표정엔 좌고우면 하지않고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통해 시장경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겠다는 소신과 의지가 그득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대학생활을 보냈음에도 시위, 집회에 한 차례도 나가본 적 없는 ‘범생이’였던 자신이 경제개혁의 투사 아닌 투사가 된 지금에 이르게 된 계기에 대해선 완벽한 ‘우연의 연속’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1990년대 중반 경제전반의 병폐를 도려내기 위해 현실로 뛰어든 그가 시민활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의무’라고 주장한 조순ㆍ정운찬 교수의 신념에 대한 깊은 공감이 컸다고 귀뜸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을 ‘머리에 뿔난 사람’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지금의 대기업과 경제 기득권층을 모두 해체해야한다는 식의 과격한 개혁론자가 아닌 국가경제를 오롯이 경제학의 ‘손익’측면에서 접근하는 합리적인 진보 경제학자로 봐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특별대담에서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등 사회적 화두에 대해 소상하게 소신을 밝히고 있다. 김 위원장은 경제학자의 시각과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한 재벌개혁을 이루는 게 자신의 신념이라는 점을 분명히 써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장 집무실에서 있었던 김 위원장과의 대화 내용을 정리 해본다.

- 세종에 내려온 다른 부처 장관들에 비해 세종시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고 들었다.

▶ 적어도 주 3일은 세종에 있으려고 한다. 공정거래위원장은 업무상 직원들과 만나고 스킨십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매주 수요일마다 전원회의를 주재해야하는 이유도 있다. 최근에는 국회에 갈 일이 적어서 가급적 세종시에 머무르려고 한다. 기러기 생활이 새로운 맛도 없지 않다.(웃음)

- 단도직입적으로 김 위원장 하면 가장 떠오르는 장면이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다.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설전,보안요원들과의 몸싸움, 찢겨진 바지 등등.

▶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 중 하나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반골에 사회의식이 강하고, 재벌개혁을 필생의 목표로 삼은 것 아니냐고들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 때는 시위 한 번 나가본 적 없는 ‘범생’이었다. 대학교수가 되고 처음으로 농성이란 걸 해봤을 정도다. 2004년 그때 당시의 모습이 임팩트가 커서 그 이미지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같다.

- ‘재벌개혁’에 대해 처음 인식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믿을 지 모르겠지만, 대학교수가 된 이후 부터다. 대학 때 경제학 중에서도 금융 계통 공부를 했고, 그걸로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됐다. 교수가 되고 나서 새로운 연구를 해야 했는데, 금융기관이 공급하는 자금 측면에서 한국경제를 보던 것을 자금을 사용하는 기업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업을 연구하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 학자로서의 ‘재벌개혁론’이 현실 참여로 이어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

▶ 교수 2년차였던 1995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 집행부 교체 시기가 있었는데, 선배들로부터 거기 총무국장 자리에 가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새 의장이 김상곤 현 교육부총리였고, 정책위원장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민교협의 총무국장으로 2년간 활동을 했고,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좀 더 현실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99년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연구하다가 이를 해결해 줄 곳을 찾아 장하성 당시 고려대 교수의 권유로 참여연대를 찾아갔다. 그런데 도움은커녕 “문제를 갖고 온 당신이 해결하라”며 재벌개혁감시단장을 떠맡기더라. 시민단체 활동은 이렇게 우연처럼 시작됐다.


- 공정거래위원장이 된 것도 우연인가.

▶ 우연이라면 우연이다. 강단에 있으면서 공직을 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난 대선 직전 당시 문재인 후보의 선거캠프에 들어가 두 달 일했던 것이 여기까지 오게된 거다. 솔직히 캠프에 들어갔을 때 공직에 들어설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 재벌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하셨다. 우리 사회에는 재벌에 대한 양면적인 인식이 존재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 우리가 쓰는 재벌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집단, 또 하나는 이건희 정몽구 등 그룹을 지배하는 자연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재벌에 대한 양면적인 시각이 분명하다. 사회에서 기득권, 특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서적인 반감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기업에 대한 애정이 있다. 자국 기업들에 애정과 자부심을 가진 국민들이 한국만한 나라가 없다. 하지만, 그 기득권을 오남용하는 총수 일가는 증오까지 한다. 이렇게 본다. 기업과 기업인을 구분하면 양면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개혁이 기업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기업인들의 일탈된 행동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다른 경제주체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불법부당한 사익추구 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재벌개혁의 핵심인 것이다.

- 위원장과 공정위에 쏠리는 국민적 기대와 지지가 부담스럽진 않은가?

▶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기에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근본적으로 개혁의 책무가 있다. 그렇지만,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라 매우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가야한다. 10대 그룹 간담회 때도 말했지만 양립 불가능한 비판의 한 가운데로 일관되게 가겠다.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겠지만 경제문제는 매우 신중하고도 합리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걸 국민께 설명하고 올바른 개혁의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김상조하면 많은 분들이 2004년 삼성전자 주총 때 샤우팅하고 끌려나가는 모습을 기억한다. 저는 경제학자다. 지금의 모습은 기획된 것이 아니고, 우연이 연속된 결과다. 경제학자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혁명이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그것이 가져올 비용과 편익을 비교 분석해 이익이 크고 지속가능한 쪽으로 제도와 방향을 만들어 가는게 경제학자의 본질이다. 제가 아무리 진보 경제학자로 여겨지지만 기본적인 사고는 경제학자의 모습이다. 너무 머리에 뿔난 사람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경제학자다운 개혁의 방법을 끊임없이 찾겠다. 



정리=유재훈 기자/igiaza7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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