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뉴스탐색]“술자리 농담도 죄가 되던 시절”…42년 유신 그림자, 여전한 고통
-과거사 사건 재심 이어져도 고통은 그대로
-피해자들 ‘무죄 판결문’ 편지로 받는게 전부
-이미 숨진 경우 많아…“보상 부족” 비판도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박근혜가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하다고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따라 다니냐.”

오 모(80) 씨는 지난 1978년 술자리에서의 한 마디 때문에 평생을 전과자로 낙인찍혀 살아야 했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유신헌법과 당시 영애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했는데, 이를 들은 다른 손님이 경찰에 오 씨를 신고한 것이었다.

당시 경찰은 국가 원수의 딸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오 씨에게 강압적인 수사를 반복했다. 1년여에 걸친 재판 끝에 오 씨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가 적용돼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해야 했다.

[사진=헤럴드경제DB]

뒤늦게 검찰이 과거사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면서 지난해 12월 오 씨의 재심이 열렸다. 그러나 오 씨는 재심 개시 넉 달 전에 이미 사망한 뒤였다. 뒤늦게 유족들이 무죄 판결문을 받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오 씨는 자리에 없었다.

과거 잘못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위반 혐의가 적용돼 사법피해를 봤던 시국사범들에 대한 재심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피해자가 사망한 뒤인데다 보상 과정도 복잡해 피해자들의 상처는 여전한 상황이다.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살았던 박모 씨도 숨진 지 39년 만에야 최근 검찰의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인정받았다.

평범한 농부였던 박 씨는 무심코 “박정희 때문에 공무원들이 농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고 주변에 얘기했다가 이를 들은 면사무소 직원이 신고하면서 실형까지 살아야 했다. 사건 이후 박 씨에게는 ‘전과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가족들도 덩달아 피해를 봐야 했다.

함께 고통을 받은 가족들은 박 씨가 숨진 지 40년이 다돼서야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문과 형사보상 안내장을 받을 수 있었다. 박 씨의 가족들은 “뒤늦게 무죄를 받았지만, 이미 돌아가신 분의 명예는 어떡하느냐”며 “종이 한 장으로 그간 잘못을 넘어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사정기관과 사법부의 잘못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뒤늦게 날아온 판결문뿐이었다. 피해자들은 “사과 전화 한 통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 필화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은 김정택 신부도 “재판이 진행되는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재판이 끝났다며 판결문과 안내문이 편지로 왔을 뿐”이라고 했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직권 재심 TF’를 구성해 과거사 청산에 나선 상황이다. 그러나 검찰 안에서조차 “사과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뒤늦게 과거사 사건 재심 청구에 나선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그동안 고통받아온 피해자들에게 무죄 판결문만으로 충분한 사과가 이뤄질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osyo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