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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 사람- 김앤장 20년차 ‘맏언니’ 이윤정 변호사]환경법 전문가 ‘롱런’…“일희일비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
남성 중심 문화에 항상 긴장
변호사 된 뒤 ‘여성성’ 부담 덜어
‘82년생 김지영’문화 여전 놀라워
“아이들 평등사회 살았으면”

이윤정 변호사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맏언니다. 1999년부터 일을 시작해 올해가 20년 째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뿌리깊은 법조계에서 환경법 전문가로 ‘롱런’하고 있는 이 변호사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명덕여고, 서울대 영문과 △영국 런던대 SOAS 법학과 △사법연수원 28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환경부 고문변호사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회 해석위원 △환경부 제8기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현)

#대학

이 변호사의 학창 시절은 그리 밝지 않았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울 때였고, 학교를 가는 건 데모를 하러 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폭력적이었어요. 군사정권도 그랬고, 학내 분위기도 무서웠죠. 동참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못받을 것 같은 분위기랄까요. 그런 게 있던 시절이었죠.” 한 번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토론을 하는데, 작중 ‘난장이’들의 아버지를 동정하는 말을 꺼냈다가 한 선배로부터 ‘쁘띠부르주아지를 옹호한다’고 잔소리를 듣는 일도 있었다. “누구나 혁명투사가 돼야 하는 듯 얘기했어요. 저로선 힘들었고, 빨리 탈출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서울대 영문과에는 상대적으로 여학생이 많았다. 어떤 교수님은 ‘나중에 누구를 공부시키고 제자로 삼겠냐’고 푸념을 했다. “막상 대학원 공부를 해보니 저와 안맞았어요. 내가 여자라서 쉽게 문학 전공을 선택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죠.”

#사법연수원

대학원에 가니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는 건 잘했지만, 문학을 읽고 비평하는 과정이 힘겨웠다. 마침 집안 형편도 어려워져 직업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그 때가 법대생 아닌 사람들이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하던 초기였어요. 아는 선배에게 물었더니 ‘민법총칙’부터 봐야 한다는거에요. 서점에서 책을 사서 혼자 공부를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었어요.”

시험 합격 후 2년 간 생활한 사법연수원은 학교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조직생활을 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한 반 50명 중 여성은 이 변호사를 포함해 3명 뿐이었다. 술도 많이 마시고, 잘 어울렸지만 불편한 점이 많았다. “크건 작건 늘 긴장과 불편함이 있었죠. 식사자리 가서 앉으면 수저라도 놓고, 커피도 나르고, 남자들이 하는 이상한 얘기도 참고 들어야 했고요. 한 번은 술을 마시다가 저를 데리고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을 간 일도 있었어요. 그 때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화가 나죠.”

#로펌

공직은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변호사가 되기로 했고, 김앤장에서 비로소 ‘여성’이 아닌 한 명의 전문직 사회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여기 와서 명함을 받는 순간 불편한 것들이 사라졌어요. 사무실 분위기도 평등하고 자유로웠거든요. 불필요하게 업무 외 시간에 불러내는 사람도 없고, 가끔 누가 초대를 하더라도 바쁘면 안가도 됐어요.” 이 변호사는 일을 시작한 30대 초반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독립된 사람으로 존중을 받았고, 누구도 사생활을 간섭하거나 여성성을 규정짓지 않았다.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변호사는 이제 초등학생 학부모 역할도 해야 한다. 일하는 곳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집을 잡았다. 흔히 말하는 학군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근처에 소아과 하나 없어 아프면 멀리 나가야 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는 하나만 보고 내린 결정이다. “아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 ‘엄마는, 한참을 기다리고, 한참을 기다리고, 한참을 기다려도 안와’라고 하더라고요. 알게된 지 얼마 안되는 분께 아이를 맡기고 일하러 오면 눈물이 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와 좀 더 가까이 있지 못했던 게 후회되죠.”

이 변호사는 환경법 전문가다. 다른 변호사들보다 전공분야를 일찍 정했고,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보람도 느낀다. 이제는 후배 여성 변호사들이 상담하러 찾아오기도 한다. 그는 “일희일비 하지 말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잘하고 못하고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줄 알아야 합니다. 안좋을 때 자책하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이를 다른 데 맡긴다던가 하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아야 해요.”

이 변호사도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82년생이면 정말 젊은 세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겪은 게 그대로라는 점이 놀랍죠. 변호사라는 갑옷 하나 입고 있었다고 해서 제가 예외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어지는데요. 요즘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아이들이 평등한 사회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많이 지지해줘야죠.”

좌영길 기자/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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