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읽기-정재욱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희미한 장관의 추억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오는 10일로 꼭 1년이다. 인수위도 없는 급작스런 정권 출범에 우려도 많았다.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탄핵 정국으로 초래된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무난히 수습하며 정치ㆍ사회적 안정을 일궈낸 건 평가할 만하다. 평창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이를 매개로 남북 화해 분위기를 끌어내는 기대 이상의 성과도 있었다. 70% 안팎의 꾸준한 지지율 유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양지만큼이나 음지의 그늘도 깊었다. 여러 지적이 제기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희미해진 장관의 존재감이다. 국정을 꾸려가는 무대 위에 문 대통령과 청와대만 보이고, 주도적 역할을 해야할 장관들은 찾아보기 어렵기에 하는 말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가 한국정치학회에 최근 제출한 ‘문재인 정부 1년의 평가와 전망’ 논문에서 가장 먼저 꼽은 문제점 역시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이었다. 청와대에 힘이 집중되면서 소수 참모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왜곡되고 부패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외교부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정상회담, 이어지는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가 숨가쁘게 돌아가는데도 강경화 장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북미정상간 만남을 앞두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극비리에 평양을 다녀온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정의용 안보실장의 상황 주도가 ‘미국통’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정도의 차이일 뿐 유사한 예는 차고 넘친다. 정부 개헌안 설명에 민정수석이 나서는 판이니 주무부처인 법무부 장관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당면 최대 과제라는 일자리 정책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바람에 재정경제부와 고용노동부 장관은 늘 들러리 신세다.

어쩌다 장관의 소신 발언이 나와도 묵살되기 일쑤다. 김동연 부총리는 법인세 인상 등과 관련해 ‘증세는 없다’고 수 차례 호언했지만 결국 정치권의 ‘증세 검토’에 밀렸다.

그나마 집행된 정책도 헛발질 연속이다.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100개가 넘는 대입 정책 경우의 수를 던져 놓고 결정은 ‘하도급’에 맡기겠다는 교육부 장관,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닥쳤는데 뒷북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환경부 장관, 아파트 택배 물품 배달에 나랏돈을 쓰겠다는 국토부 장관…. 무능한 것인지, 무책임한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 시절 조지 마셜 국무장관은 이스라엘 독립 승인에 반대하며 “다음 선거에서 당신을 찍지 않겠다”는 극언까지 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장관이라면 국익을 위해 기꺼이 노(NO)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존재감은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 지시사항이나 받아적는 착한 학생같다고 흉 보던 이전 정부 장관들과 다를 게 없다.

‘장관 중심의 국정 운영’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공약 이전에 장관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서야 나랏일이 톱니바퀴처럼 짜임새 있게 굴러간다. 지금처럼 남은 4년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