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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생존자 애진양 어머니 김순덕씨 인터뷰] “생존자 가족도 유가족들도 부둥켜안고 견뎌낼 겁니다”
2018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참혹했던 전남 진도와 세월호 선체가 누워있는 목포 신항에는 지금도 아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싸늘하게 발견된 희생자 299명과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5명이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뿐만 아니다. 살아서 돌아왔지만 차가운 시선에 시달려야하는 생존자와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삶은 여전히 세월호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무심코 타인의 고통을 재단한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그 가족들은 지난 4년간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고 구분짓는 시선과 마주하며 살아왔다. 죽은 사람도 있는데 산 사람이 무슨 불만이냐는 차가운 시선 앞에, 생존자 장애진(22) 양 가족은 세월호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삶을 선택했다.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와 함께 하며 슬픔과 마주했다. ▶관련기사 9면


▶단원고 교복 입은 애진 엄마ㆍ진실호 모는 아빠=그날 이후 애진 엄마 김순덕<사진> 씨는 1인 5역을 소화하는 연극배우가 됐다. 김 씨는 지난 5일 안산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극단 노란리본) 무대에 올랐다. 4월에 16번이나 열리는 해당 공연에는 8명의 단원고 학생 어머니가 배우로 나서 세월호와 이웃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공연에서 김 씨는 유일한 생존자 가족이다.

그가 유가족과 함께 공연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생존자 가족도 같은 고통을 떠안은 이웃으로 품어준 다른 엄마들 덕분이다. 그는 “밖에선 생존자와 사망자를 구분짓지만 다른 엄마들은 오히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라면서 꽉 안아줬다”며 다른 엄마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엄마들 사이가 끈끈해질수록 김 씨의 슬픔은 더욱 깊어진다. 그는 “처음에는 몸이 힘들어서 아픈 줄 알았는데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픈 것이더라고요. 함께 할수록 다른 엄마들 마음이 점점 더 깊게 전해져서 더 아픈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것보다 세월호를 여기서 놓아버리는 게 훨씬 더 힘들 걸 알아요. 아이 아빠도 그걸 알기 때문에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계속해서 유가족과 함께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애진 양 아빠 장동원 씨는 참사 이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선박운항 자격증을 취득해 ‘진실호’를 몰고 있다. 장 씨는 4ㆍ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 팀장ㆍ생존자 대표로 활동 중이다.

▶‘생존자’ 편견 딛고 일어서는 딸…그래도 4월은 아프다=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누구보다 애틋한 가족이지만 4월이 되면 오히려 속내를 털어놓기 어려운 사이가 된다. 엄마가 꺼내는 세월호 이야기에도 딸은 그저 ‘응응’하고만 대답한다. 애진은 세월호에 관한 일은 작은 것 하나도 엄마에게 이야기하기 힘들어했다. 엄마가 기억하는 애진의 이야기는 공부 못하는 문과가 많이 죽었다는 악플을 보고 “엄마, (학교에) 이과가 원래 별로 없었어요. 내 친구들은 이과도 문과도 똑같이 많이 죽었어요” 말한 것 정도다.

김 씨는 “2,3년 전 배안에서 어떤 친구가 이러저러했었다는 얘길 했던 게 나중에 알고보니 친구가 아닌 자기 얘기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직접 겪은 상처조차 다른 이의 경험처럼 넌지시 이야기할 정도로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생존자의 아픔이 묻어났다.

생존자로 광화문 광장에 나서기도 했던 딸은 발언대 오르거나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면 낮에도 가위에 눌려 엄마 옆에 누워 자기도 한다. 씩씩한 딸이지만 그날의 트라우마가 여전한 것 같아 지켜보는 엄마는 마음이 아프다. 중학교 때 요리학원을 다녔고 풍선 아트도 잘 했던 딸이 진로를 바꿔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한 후로는 혹시 사고 현장에서 뒤늦게 트라우마가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그 선택의 의미를 알기에 막지는 못했다.

그런 딸이 지난해에는 ‘2017 에버트 인권상’ 시민 대표 수상자로 나섰다. 예상대로 딸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김 씨는 “과연 대표 수상자로 나가도 되는 것인지 많이 고민했다. 아이 아빠가 ‘어쩌면 네게 용기를 주려고 가라고 하는 것 같아. 앞에 나서는 일은 힘들지만 앞으로 너의 친구들의 진실을 밝히는 활동에 더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야’라고 응원해줘 용기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4년이 지나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지만 애진 가족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아프지만 계속 함께 아프고 싶다는 애진 양 가족에게 생존자와 사망자를 구분짓고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는 일은 전혀 무의미하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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