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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제자 위해 목숨 던진 그들…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그날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제주도로 향하던 배 한척이 진도 앞바다에서 전복됐다. 얼마 안있어 “탑승자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떴는데, 오보였다.

사건을 진두지휘해야할 대통령은 관저에 숨어 행방이 묘연했다. 당시 정부는 구조는 물론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할 의사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당시 사고현장에서 뛰었던 의인들의 사례가 알려졌다. 한명이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고,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故 정차웅 군은 세월호 선박이 침몰할 당시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친구를 위해 자신이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줬다. 그러면서도 다른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힘썼다. 결국 정 군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로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군은 지난 2016년 보건복지부 의사상자 심사위원회에서 의사자로 인정됐다.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던 故 허다윤 양은 그날도 친구들을 돕기 위해 힘썼다. 객실을 가방에 놔둔 채 친구들과 4층 중앙 계단으로 이동했다. 허 양의 친구들은 허 양이 친구들을 먼저 앞세웠고, 헬기를 통해 구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월호 선체에서 허 양의 유해가 나왔다. 허 양의 발인은 지난해 9월 진행됐다.

많은 교사들도 당시 현장에서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故 고창석 교사는 사고 당시 탈출이 쉬운 5층 로비에 있었지만 탈출하지 않고 4층 객실로 향했다. 아래층에 남아있을 학생들을 구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4층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 구명조끼를 챙겨줬다. 그리고 본인은 정작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시 2학년 6반 담임이던 故 남윤철 교사도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배 안에서 5반 담임이던 故 이해봉 교사와 故 최혜정 교사 등 당시 많은 교사들이 사고 당시 학생들을 대피시키느라 자신은 끝내 세상을 떠났다.

세월호에서 순직한 교사들은 ‘순직 군경’으로 인정됐다. 그리고 11명 가운데 10명이 현충원 묘역에 묻혔다.

당시 세월호에서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힘썼던 승무원들도 있다. 故 양대홍 세월호 사무장, 승무원 故 박지영, 故 정현선, 故 김기웅 씨 등이 이들이다. 이들은 지난 2015년 의사자로 인정됐다.

일반인임에도 승객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이도 있다. ‘파란바지의 의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김동수(54) 씨다. 지난 2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세월호 구조에 참여했던 故 이광욱 잠수사와 故 김관홍 잠수사는 실종자 수색과 유해 수습을 위해 뛴 이들이다. 이 잠수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자원봉사로 수색작업에 참여하던 중 설치된 가이드라인에 공기호스가 걸려 호흡곤란 증세를 겪었고 이후 구조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김 잠수사는 세월호 참사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유해 25구를 수습해 유가족들이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진상규명 활동에도 활발하게 나섰다.

하지만 구조작업 당시 무리한 잠수로 후유증을 얻었고. 잠수사 일을 관둔 뒤 화훼와 대리기사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사망했다.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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