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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해 공화국②] ‘낭만’ 거리공연? 요즘은 ‘꼴불견’ 거리공해
-도 넘는 공연행태에 소음ㆍ통행길 방해 등
-민원 수 급증…제재규정 없어 구청도 골머리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야. 내가 노래하잖아.”

직장인 이효진(30ㆍ여) 씨는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을 지나다가 거리공연(버스킹)을 하는 남성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스피커 앞을 지났는데 그가 노래를 뚝 끊고는 “너 때문에 가사를 잊었다”며 무안을 준 것이다. 이 씨가 멈칫하자 이 남성은 “농담이다. 노래할 땐 원래 사납다”며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노래를)기다리니 빨리 가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 씨는 “허가받은 공연도 아닌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생각했다”며 “화가 치밀었지만 주목받기 싫어 그냥 지나갔다”고 말했다.

도를 넘은 일부 거리공연가의 ‘꼴불견’ 행태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소음 유발은 물론 시비와 욕설, 길막기 등 민폐가 이어지면서 거리 공연이 거리 공해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온다.

[사진=도를 넘은 일부 거리공연가의 ‘꼴불견’ 행태로 인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거리공연이 거리공해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출처=123RF]

거리 공연은 2000년대 후반 아마추어 공연가를 조명하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이 흥행하자 덩달아 새로운 음악문화로 비춰졌다. 서울시내 거리공연 명소로는 마포구 서교동 홍대 일대,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나루한강공원 등이 있다.

초기 대부분의 거리공연은 소소한 행사 느낌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이로 인해 소위 ‘뜨는’ 이가 늘자 눈에 띄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최근 홍대입구역 일대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귀에 대고 큰 소리를 지르는 등 민폐행위를 일삼는 거리공연팀을 만났다는 대학생 지모(22ㆍ여) 씨는 “지나가는 사람이면 모두 표적이 됐다”며 “그들은 공연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대부분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직장인 이찬수(34) 씨는 “급히 가야할 곳이 있는데 허가받지 않은 거리공연으로 길이 막히면 순간 화가 치민다”며 “인파를 뚫고 가다 발이 밟히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주변 상인의 불만도 상당하다. 인근 화장품 매장의 점원은 “매번 듣고 싶지 않은 노래를 강제로 들으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임모(55) 씨는 “길을 막고 이상한 행동을 하면 손님도 뚝 끊긴다”며 “‘거리공연 금지’라는 팻말을 세워둘까 고민도 했다”고 토로했다.

10일 서울 마포구에 따르면, 2015년 통틀어 12건에 불과했던 홍대 일대 거리공연 관련 민원 수는 올해 1~3월에만 17건이 들어올만큼 증가했다. 범위를 서울 전역으로 넓히면 민원 증가 폭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측 가능하다.

상황은 이렇지만, 행정당국은 폭행ㆍ추행 등 사회질서를 명백히 해칠 때가 아니고서는 거리공연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마포구 관계자는 “전용 거리무대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제어가 가능하나, ‘게릴라’로 이뤄지는 거리공연은 관리할 권한이 사실상 없다”며 “지난 달부터 거리공연 관련 민원다발지역을 중심으로 민폐행위에 대한 계도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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