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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탐색]‘소음도, 흡연갈등도 만만한게 경비원?’…“권한은 쥐꼬리 책임만 무한대”
-층간소음ㆍ흡연 등 아파트 내 민원 창구
-권한 밖 일도 떠맡아…주민들 갈등 유발
-‘고용 불안’에 눈물…낮은 지위 등 고통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금연 아파트, 층간소음, 비닐ㆍ스티로폼 쓰레기 분리수거…. 아파트서 무슨 일이 터지면 경비원은 동네북이 됩니다.”

아파트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세대 간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경비원의 책임은 나날이 강화되고 있지만 그들의 권한과 지위는 최저임금만큼이나 최저수준이다.


경기도 의왕의 한 금연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조학래(67ㆍ가명) 씨는 주민들 갈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 씨의 시름이 깊어진 건 지난 2월 금연 아파트 관련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입주민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층간 흡연을 신고하면, 관리사무소 직원이나 경비원이 실내 흡연이 의심되는 가구에 들어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금연을 권고해야 한다. 조 씨는 “이 나이에 이 일이라도 할 수 있는게 감사해서 참고 견디지만 주민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날엔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개정 이후 담배 냄새 나는 세대를 검사해달라는 주민들 민원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조 씨는 “어느 집이 베란다에서 담배피는 것 같다며 가서 확인해달라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지만 막상 찾아가 벨을 누르면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하는 경우가 대다수고, 도리어 인터폰으로 화만 내는 경우도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정일훈(71ㆍ가명) 씨는 야간 ‘층간소음’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혼자 사는 직장인 1인 가구들이 밤에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리거나,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일들이 많아서다. 잠을 설친 주민들은 인터폰으로 즉각 경비실에 항의 연락을 하기도 하지만, 야밤에 전 세대 방송을 할 수도 없는 경비원 입장에선 난감할 뿐이다. 정 씨는 “아파트 구조상 시끄러운 집이 윗집인지 옆집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어느 집에 권고를 해야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계속되는 소음민원에 소리증폭기를 동원해 발생지를 추적하다 해고위기에 놓인 경비원들도 있다. 지난해 12월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는 급기야 소음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경비원들이 닷새간 ‘소리증폭기’를 사용했다. 소음 민원이 계속되자 소음 유발 세대가 어딘지 확인하라는 관리사무소측 지시로 시행한 작업이지만 주민들은 ‘아파트 이미지가 나빠졌다’며 경비원들을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쓰레기 분리수거 대란이 터지면서는 급기야 경비원 폭행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1일 경기도 김포시에서는 한 주민이 ‘비닐을 버리지 말라’고 하는 경비원을 폭행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경비원 고된 일상의 중심에는 ‘고용 불안정’이 있다. 경비원 이진석(61ㆍ가명) 씨는 “주민들 대부분이 아침에 나갔다 밤늦게 돌아오다보니 교류할 일이 거의 없다”라며 “이런 사이에 감정 상하는 일이 생겨버리면 당장 용역업체에 교체 요구가 들어가기 쉽지 않냐. 주민들에겐 맞는 말도 쉽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2013년 발표한 ‘서울시 비정규직 근로조건과 생활실태 조사연구’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의 근속연수는 평균 3.4년에 불과하다.

책임에 비해 ‘낮은 지위’도 경비원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꼽힌다.

경비원들은 감시ㆍ단속자로서도 근로자로서도 낮은 지위에 처해있다. 경비원은 법적으로 ‘감시ㆍ단속적 근로자’로 분류지만 실제 감시ㆍ단속의 강제력은 없다. 오히려 ‘감시ㆍ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돼 야간근로(오후10시~오전6시) 수당 외 근로기준법상 휴일ㆍ휴게ㆍ연장근로에 관한 규정을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 직군에 해당한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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