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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리멤버.U] 아기무덤과 굴욕의 지하철역명들, ‘삑! 환승입니다’…교카로드
[헤럴드경제 TAPAS=구민정 기자] “삑!”
세계적으로 봐도 서울 지하철은 ‘최고’입니다. 아무리 많이 써도 10만원 가량이면 한달 내내 출퇴근을 하고 놀러다니기에 무리가 없죠. 못 가는 데도 없고요.
복잡한 지하철노선도를 보다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역들이 있습니다.


   송파역, 잠실역

지금은 ‘롯데월드’, ‘부동산의 메카’로 떠오른 송파 지역. 이곳은 소나무가 우거지고 삼남의 물산이 모인다 하여 송파나루란 이름의 나루터를 중심으로 큰 시장이 만들어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남한산성 부근에 만들어졌던 시장이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이곳으로 옮겨져 송파장이 되었는데, 송파장은 나라에서 영업권을 받아 장사하던 시전상인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교통의 요지여서 장사가 잘되기도 했고 당시 5일장이 보편적이었던데 반해 매일 운영하는 송파장이 고와보일리 없었던 것이죠. 시전상인들은 송파장을 없애달라며 조정에 민원을 넣게 되는데요, 실제로 영조 때 송파장의 폐지에 대해 조정의 논의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버티던 송파장도 개화기 외세 바람에는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갑오개혁으로 각종 이권이 사라지고 철도가 생기면서 손님마저 끊겨 쇠퇴하게 된 것입니다.

또 1925년 을축년대홍수를 만나 완전히 사라지게 됐습니다. 열흘 넘게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더니 이 일대가 모두 잠기면서 송파장도 모두 떠내려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랬던 이곳이 지금은 다시 롯데백화점,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해 유통과 부동산의 중심지로 떠올랐으니 정말이지 천지개벽입니다.

   애오개역, 아현역

조선시대 한양엔 사대문말고도 ‘사소(小)문’이 있었는데요. 큰 문인 대문들로는 사람들이 오다니고 작은 문으로는 시체를 옮겼습니다. 특히 서소문을 통해 도성 안에서 죽은 시체를 밖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곳을 “아이 시체가 넘는 고개”란 뜻의 애오개, 한자로 ‘아현’이라 부른 것이지요.


예전부터 고개가 많았던 이곳은 사람들이 넘으면서 ‘아이고’ 소리를 많이했다 해서 애오개라 불리는 설도 있는데요, 그만큼 고개가 흔하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달동네’ 역사에서도 크게 등장합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사람들이 원래 산이었던 이 곳에 모여 천막을 치고 살면서 마을이 된 것이지요. 지금도 가파른 고개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소위 ‘달동네’였던 이곳은 2009년부터 북아현 뉴타운 사업 지구로 지정돼 지금은 아파트촌이 됐습니다.

   동묘앞역

최근 미세먼지 문제로 우리 정부가 중국 측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죠. 이에 일부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이 인상적입니다. “어차피 ‘속국’이어서 아무 말도 못 할 듯”


‘속국’의 비애는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왕들은 명나라의 승인이 떨어져야 왕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수시로 명나라에 인삼, 금은보화의 조공을 보내야 했습니다. 조선은 명을 황제국으로 받들고, 명은 조선을 공격하지 않고 ‘돌보아 주는’ 관계였던 것이죠.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는 왜군에게 점령 당한 조선을 돕는다며 군을 파견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명나라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문묘)처럼 촉나라 장군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무묘)을 지으라는, 사실상의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관우에 제사를 올릴 사당을 지어 은혜에 보답하라는 뜻이었지요. 또 1602년 동묘가 다 지어지자 명은 선조에게 직접 제사를 지내라는 압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동묘앞이 지드래곤도 빈티지 옷을 샀던 곳(!)으로 더 유명하죠. 실제로 구제 물품을 사는 시장이 활발히 열리고 있기도 합니다.

   효창공원역

일제가 식민지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한 일 가운데 하나는 ‘유적’을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효창공원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효창공원은 정조의 첫째아들인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어 효창원이라 불렸던 곳입니다. 1924년 일제가 고양시 서삼릉으로 문효세자의 묘역을 강제로 이장시키면서 울창했던 숲이 작은 공원이 되고만 것이죠.


하지만 백범 김구 선생이 이곳을 독립운동 열사들의 혼을 기리는 곳으로 숨을 불어넣게 됩니다. 1946년 김구 선생은 효창공원 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의 묘를 모셨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지었습니다. 안중근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찾을 수가 없어 가묘만 만든 건데요. 김구 선생 본인도 1949년 돌아가시고 난 후 이곳에 묻혔습니다.

1956년 이승만 정부는 김구 선생의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김구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더 대단했던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을 비롯해 당시 극렬한 반대 여론에 무산된 바 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결국 1959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가 유치되자 효창공원에 축구장을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도 테니스장, 골프장 등 독립운동 열사들의 묘 근처에 각종 운동시설을 지으려는 시도들이 이어졌습니다.

   교카로드라면

어릴 적엔 역사를 배우면서 서글퍼서 불만이었습니다. 분노하기만 해서 싫었습니다.

교카로드를 만들면서 당시 살던 사람들 나름대로 애를 쓰며 살았고 아프지만 잘 견뎌내고 살아냈다는 사실에 힘을 얻습니다. 지금의 지하철노선도는 결국 치열하게 살아온 조상들 삶의 귀한 결과물인 셈이지요.

☞ 교카로드 어떻게 하나요

* 준비물: 교카, 현금(동묘앞 구제옷 시장 쇼핑용)

10:00 잠실역 집합→석촌호수
11:00 2호선으로 아현역 이동
11:40 아현역→애오개역 도보로 이동
12:00 아현 시장에서 점심(메밀막국수)
13:00 애오개역→동묘앞역(260번 버스)
13:40 동묘앞역에서 빈티지옷 쇼핑
14:20 6호선으로 효창공원역 이동
15:00 김구 기념관
16:00 해산


/korean.g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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