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2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는 ‘심리불속행’ 비중이 지난해 최대치를 기록했다. 변호사업계에서는 부실한 재판을 한다는 불만이 크지만, 대법원은 연간 수만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하는 현실상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26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만5364건의 민사 본안 사건이 상고심에 접수됐고, 1만3362건이 처리됐다. 처리된 사건의 77.2%인 1만322건이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1994년 심리불속행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역대 최대치다. 201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민사 본안사건 상고심 7만1715건 중 심리불속행 종결 비중이 4만2919건으로 59.8%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했다.
변호사업계에서는 심리불속행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사유를 기재하지 않아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대법원 상고가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94년 ‘상고심절차에관한특례법’ 제정으로 도입됐다. 형사사건을 제외한 대법원 사건에 법이 규정한 특정한 사유가 포함되지 않으면 심리를 하지 않는다. 사건 당사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2012년에는 심리불속행 판결이 내려질 경우 소송 당사자가 지급한 인지대의 절반을 돌려주도록 하는 내용의 ‘민사소송 등 인지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연간 수만 건 이상의 상고심 사건이 접수되는 현실에서 제도 유지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2007년 2만6392건이던 상고심 접수 사건은 2016년 4만694 건을 기록하며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처리하기엔 사건 양이 너무 많다. 대법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며 심리불속행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3심 재판 다수를 대법관이 아닌 상고법원 판사에게 맡기는 대신 사건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판결문을 내겠다는 취지였지만, 입법이 무산됐다.
국민의 3심 재판 받을 여건을 어떻게 바꿀 지는 앞으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상고허가제 도입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법원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소수의 사건만을 선별해 판단을 내리는 제도다. 안철상(61·사법연수원 15기) 법원행정처장도 20일 사개특위 업무보고에 출석해 상고심 제도 개선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좌영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