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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만 알면서 열을 안다’며 살고 있나요
지퍼·변기·샤워기 등 일상의 물건
실제 작동원리 설명할 사람 드물어
사회·자연현상 실상은 훨씬 더 복잡
소통하는 인간, 집단지능으로 이해·해결

#1부터 7까지 점수를 기준으로 당신은 지퍼가 작동하는 방식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지퍼가 작동하는 과정의 모든 단계를 최대한 자세히 기술하라.

이런 질문지를 받았다면 지퍼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기술하기 힘들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예일대 프랭크 케일 교수와 그의 동료 로젠블리트는 실험참가자들에게 우선 지퍼의 작동방식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점수를 매기게 한 후, 작동방식을 설명하게 했다. 그런 뒤 다시 작동방식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점수를 매기게 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보다 훨씬 낮은 1점과 2점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무지를 평가하는 실험으로 유명한 이 실험의 요지는 간단하다. 무엇을 아는지 알려면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설명하게 하고 그 이해의 수준을 스스로 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안다고 여기고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서도 안다고 믿으며 복잡성을 무시한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의 지식으로 정당화되며 우리의 행동은 정당한 신념을 기반으로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것은 이해의 착각이다.”(‘지식의 착각’에서)

오랫동안 마음을 연구해온 인지과학분야의 권위자 스티븐 슬로먼 브라운대 교수와 그의 동료 필립 페른백은 ‘지식의 착각’(세종서적)에서 아는 것의 한계에 대해 집중 조명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인류의 지혜에 대해 들려준다.

저자는 우선 우리가 얼마나 지식의 착각에 빠져 있는지 낱낱이 들춰내 보여준다.

지퍼의 작동방식은 물론 변기나 샤워기 등 일상의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가령 머리핀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핀의 용도 뿐 아니라 머리핀을 이루는 다양한 물질, 각 물질의 출처, 각 물질이 머리핀을 만들 때 쓰인 방식, 머리핀이 팔리는 장소, 사는 사람까지 모든 면을 이해한다는 의미다. 머리핀을 누가 사는지 알려면 헤어스타일을 분석해야 하고 그러려면 패션과 기본적인 사회구조를 알아야 한다. 물건 뿐만 아니라 세금정책, 유전자 조작 식품, 기후변화, 자신의 재정상황까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들은 드물다. 반면 세상은 놀랍도록 복잡하다. 커피 머신 같은 간단해 보이는 현대 가전제품들은 매우 정밀해 고장이 나면 새로 사야 한다. 항공기는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각자 맡은 부분만 이해할 뿐이다. 사회현상은 더 복잡하다. 중국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에 허리케인이 일어날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은 세상의 복잡성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라는 걸 보여준다. 자연현상은 한층 더 복잡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의 극히 일부만 알면서도 많이 아는 것처럼 말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이는 마음의 작동방식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마음은 모든 대상이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며, 뇌는 세세한 기억보다는 인과관계를 따져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또한 생각은 외부의 정보를 머릿속 정보와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취급하도록 설계됐다. 우리가 지식의 착각 속에 사는 이유가 바로 머릿속 지식과 외부 지식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무지한데도 우리가 세상의 복잡성에 압도당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우선 인간의 성찰 능력을 꼽는다.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지하며 자신의 사고과정까지도 관찰한다.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고 수정이 가능한 것이다.

또 다른 능력은 남들과 의도를 공유하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 소통하면서 같은 사건을 경험할 뿐 아니라 그 같이 경험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렇게 관심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서로가 인지하면 주어진 경험은 확장된다. 함께 하는 일과 함께 성취할 수 있는 일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의도를 공유하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 곧 지식을 저장해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공유된 활동이 복잡해질수록 공유된 지능도 높아지게 된다. 이런 생각의 작동방식과 진화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타인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게 가능하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인류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도 이런 집단지능과 지식공동체에 의해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저자들은 내다본다. 지식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협력한다면 탁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진정한 초지능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집단지능에서 나올 것이란 전망이다. 책은 마음이란 무엇인가부터 생각의 구조, 지능과 도구, 기술의 미래까지 폭넓게 담아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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