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진 : 에코-바람으로부터’ 전
사막, 길위에서, 윈드, 파고다 등
11개 시리즈 65개 작품 전시
건조하고 거친 사막 풍경의 편린들이 한지 위에 앉았다. 분명 사진이지만 한지가 가진 독특한 질감 때문인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하다. 말라 비틀어진 나무 둥치와 쩍쩍 갈라진 바위풍경이 붓질을 타고 투명하게 다가온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사진작가 이정진의 개인전 ‘이정진:에코-바람으로부터’를 유럽 사진전문기관인 빈터투어 사진미술관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1전시실에서 8일부터 개최한다. 수제한지에 붓으로 직접 감광 유제를 바르고 그 위에 인화하는 방식으로 매체와 이미지의 실험, 물성과 질감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 현대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1년엔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프레데릭 브레너가 스테판 쇼어, 제프 월 등 세계적 사진작가 12명을 초청해 진행한 ‘이스라엘 프로젝트’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참여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번 전시는 사막, 길위에서, 윈드, 띵스(Things), 파고다 등 11개 시리즈 65개 작품과 작업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일지 등이 출품됐다.
“광활한 사막의 그 느낌을 프레임에 담기가 어려웠어요. 저는 나름 ‘프레임의 대가’인데 말이죠. 프레임으로 잡으면 이 모든게 단절되는 느낌이었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한지에 인화를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막이 주는 에너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는 여건을 주는 것 같아요. 한지작업도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했고, 프레임 안과 밖의 소통을 꾀하고자 방법을 찾던 다양한 시도 중 나타났지요”
한지에 직접 감광 유제를 발라 인화하기에 이정진 작가의 작품은 사진작품에서 흔히 말하는 ‘에디션’이 의미가 없다. 수제로 인화지를 제작하는 형태라, 같은 이미지를 인화하더라도 결과물이 달라진다. 사실상 모든 작품이 ‘오리지널’인 셈이다. “감광유제를 바르면 바른 부분만 이미지가 나오고, 붓으로 바르면 붓자국 만큼만 이미지가 뜹니다. 이전엔 카메라 프레임의 구도에 의존했다면, 한지 인화를 하면서는 프레임에 대해 자유로워졌고, 확장을 시도할 수 있었죠”
한지인화가 가져오는 우연성은 이정진 작가의 또다른 특징이 됐다. 토마스 시리그 빈터투어 사진미술관 디렉터는 “표준화되지 않은, 실수에 의해서, 마감되지 않은, 완성되지 않은, 불규칙적인 것들이 이정진의 작품을 특징 짓는다”며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작가는 수작업으로 작품을 제작하는데, 이는 ‘사진’이라는 것이 처음나온 1850년대의 그것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모두 프레임이 없이 걸렸다. 사막의 소외된 풍경, 일렁이는 바다와 땅의 그림자, 석탑, 일상의 사물 등 작가의 감정이 투영된 대상과 이에대한 시선이 가감없이 전달된다. 아날로그 작품의 독특한 질감 그대로를 만날 수 있다. 7월 1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