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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경력단절작가 지원정책 필요하다
‘2004년 사비나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야만의 흔적>이후, 14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제게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전시 중인 김재홍 작가를 만났을 때, 그는 14년을 힘주어 강조했다. 과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듯,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을 도살당한 고기 덩어리에 비유한 119점의 작품은 주제, 기법 면에서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필자는 그가 14년의 긴 세월 동안 겪었던 고통과 희생, 절망감이 인체와 껍질이 벗겨진 가축을 결합시킨 괴기한 이미지에 투영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1980년대 리얼리즘 작가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던 김재홍은 2004년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이후 돌연 창작 활동을 중단했다. 가까운 동료작가 전시개막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정도로 미술계와 거리를 두었다. 김재홍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던 미술인들의 안타까운 심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잊혀진 작가가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 전시에 그의 대표작품 ‘아버지-장막 l‘’, 아버지-장막 ll‘를 만났을 때, 그를 잠시 기억할 뿐이었다. 그림 그리기가 곧 삶의 목표였던 그는 왜 창작활동을 중단했을까?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2004년 경 중병에 걸린 아내의 병원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힘든 상황에 처했다. 유일한 수입원인 그림은 화랑가에서 전혀 팔리지 않았다.

미술시장은 김재홍을 외면했지만 출판시장이 그의 재능을 간파하고 그림책 스타작가로 만들어주었다. 상복도 이어져 전 세계에서 2년에 단 한권을 선정해 시상하는 ‘2004 에스파스앙팡’상, 세계 그림책 비엔날레 BIB 어린이심사위원상, 프랑스 앵코립티브상을 한국 최초로 수상하는 등 한국출판미술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김재홍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그림책 작가가 되었지만 한순간도 미술계를 잊은 적이 없었다. 가장의 의무와 책임에서 해방되는 날, 작업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불태웠다.

그는 14년 만에 열린 개인전으로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켰지만 안타깝게도 앞날이 밝지 않다.

경력단절 작가가 재기하기엔 걸림돌이 많고, 공공기금지원혜택도 받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경력단절 작가는 지원대상이 아니다.

신청일 기준 2년 이내 공개 발표된 예술활동 실적 증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책에 ‘포기는 중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단은 늘 하는 것이지만 포기는 그것으로서 마지막이다...시작하고 또 시작해야 하는 것이 예술인 것을’ 라는 구절이 나온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작업을 중단한 경력단절 작가들이 포기하지 않고 미술계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술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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