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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MeToo…아직 나서지 못한 그대들에게
 [헤럴드경제 TAPAS=구민정 기자]

#YouToo
“너는 언제 할거야? 대세일 때 해야지. 때 놓치는 거 아냐?”

의류회사에 다니는 지은(가명) 씨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작년 봄, 지은 씨는 회사에서 야근을 하던 중 직장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다음 날 가해자는 구두로 사과했다.

“면피용였어요. 건성으로 ‘어젯밤에 내가 잠깐 돌았나보다. 미안하다. 어제일 너무 신경쓰지마라’고 했거든요.”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마음 속에 묻고 지내다 최근 성범죄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활발해지자 지은 씨의 시계는 다시 작년 그때로 돌아가있다. 하지만 지은 씨는 선뜻 나설 수 없다.

“만약 제가 폭로한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치명타를 입겠죠. 지금도 회사서 잘 나가는데요. 제 잘못이 아니라 명백히 그 사람 잘못인 걸 머리론 알지만 (가해자가) 어떻게 되면 죄책감 들 거 같아요. 지금 잘하고 있는 제 회사생활도 곤란해질 거고요.”

이런 복잡한 지은 씨의 속도 모르고 친한 동기 한 명은 계속 ‘때’ 타령이다.

“(성추행 사실을 알고 있는) 동기는 얼마전부터 계속 ‘너는 언제할거냐’고 물어요. 사회적으로 너도나도 나설 때 해야 회사도 제대로 해결할 거래요.”


#말하기
성범죄 사실을 폭로한 생존자들보다 그렇지 못한 생존자들이 더 많다.

흔히 상사가 부하직원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우월적 지위를 통한 성범죄’는 하루에 2번 꼴로 꼬박꼬박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다. 

2012년 341건, 2013년 447건, 2014년 449건, 2015년 523건, 2016년 545건이다. 지은 씨처럼 신고하지 않은 범죄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많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사내 성범죄 처리시스템이 미흡해서, 피해자 신원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을게 뻔해서다.

가해자를 비난할 사람보다 ‘잘못 걸렸네’ 옹호하고 지켜줄 힘이 더 클 것도 안다.

“폭로했다간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는데 희생자에게 쉽게 ‘당당해져라’, ‘너도 나서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에요.” - 대학교 동기였던 가해자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생존자 유진(가명)씨

“고통 자체도 상처지만,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한 상처다. 그래서 말한다는 것은 묘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개입하고 헌신(commitment)하는 실천(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본문 중에서)”이기 때문이다.


#JustYOU
이야기를 함께 나눈 희생자들은 나서지 못한 데 대해 또 다른 자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챙겨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나도 말하고 싶은데…’하며 스스로 조급하시기도 하고 이 사람들 다 공익적인 목적으로 말한다는데 나는 안해서 다른 피해자 생기는 것 아닌가 염려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비겁한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죠.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워요. 하지만 그런 마음 때문에 압박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요. 강요할 수 없는 문제고 생존자 본인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요. ‘대의에 너도 동참해라’, ‘지금쯤이면 말할 수 있지않냐’, ‘당당하게 얘기해라’ 이런 요구들이 생존자한테든 말하기(미투 운동) 전체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요? 얼마나 대단한 도움이 될까요?” -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개인이 미투운동과 관련해서 본인이 고발하는 주체로 선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건 싸움으로 이해해야해요. 말을 한 사람에 대해서 지지는 해야 하지만 얘기 하지 않은 수많은 생존자에 대해서 존중을 해야합니다. 생존자들이 말하기 대회를 했을 때 말하기 자체를 굉장히 두렵고 괴로워해요. 그 과정 자체가 엄청 아파요.

생존자 본인이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할 수 있어야 하는거지, 주변에서 아웃팅을 시키면 안돼요. ‘너도 해라’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여성이 스스로 용기를 낸 데 대해서는 지지하고 존경해야 하죠. 하지만 생존자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말을 했을 땐 그 상처를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하잖아요. 개인이 그 상처를 견딜 수 있는 지 스스로 자문하고, 말하기를 준비할 때도 법적 자문, 여성단체 자문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엎드려절받기
조직 내 성범죄에서 가해자 스스로 사죄하거나 반성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큰 잘못인 줄 알았다면 애초부터 하지 않았을 터. 그래서 대부분 지위가 낮은 생존자들이 이미 바닥수준인 용기를 또 내고 또 내어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 요구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하거나 생존자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많다.

생존자 지은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건 다음날 가해자에게 요구해서 받았던 면피용 사과에 대해 계속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가해자가 ‘이미 충분히 사과했는데 이제와서 왜 또 그러냐’고 생각하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사과를 생존자가 가해자에게 요구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 과정이 생존자 입장에선 구차하고 엎드려 절받기 맞죠. 사과를 꼭 받아야 겠다면 요청하는 거지만 아니면 안하셔도 돼요. 사과 받아야한다 강박감 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사실 사과문보다 가해자 스스로 반성문을 쓰는 게 더 맞죠. 면피용 사과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가해자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아야하니깐요.” -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처벌하시겠습니까
사과뿐만 아니라 처벌 여부도 생존자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생존자는 여러모로 요구해야 하는 것도 참, 많다. 생존자가 처벌을 요구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을건가. 수사기관 혹은 조직시스템 내에서 범죄사실과 관련해 알아서 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게 시스템이다.

“성범죄가 다른 범죄랑은 다른 게 가해자 처벌 과정에서 생존자가 자책감을 가져요. 아는 사이고, 지인이잖아요. 누군가를 징계해달라고 하는 게 가진 무거움이 훨씬 크죠. 생존자에게 처벌을 요구하는 지에 따라 징계 여부가 달려있는 구조가 문제에요. 꼭 생존자한테 처벌 의사를 물어봐요. 그럼 생존자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죠. 생존자가 ‘나만 참으면 처벌 안 받아도 되는데’하며 자책감을 가지니깐요. 생존자에게 불필요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일이에요.” -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Withyou
“이윤택의 경우 생존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섰지만 유명하지 않은 일반인 가해자의 경우엔 모든 2차 가해를 개인이 혼자 받아야 할 수도 있어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언론에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1차적으로 상담소에 가서 상담을 먼저하고 법적으로 할 수 있는지 법망을 피해서 SNS로 폭로할 수 있는지, 주변에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충분히 알아봐야 해요. 상담소가 제일 좋죠. 아무한테나 주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을만한 주위인지 생각해봐야해요. 또 다른 상처나 가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죠.” -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대중 앞에 나서고 가해자에게 맞서는 것 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의 치유와 보호를 위해, 힘들지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떨까. 나서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무엇도 당신의 잘못이 절대 아니니깐.


/korean.g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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