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임시정부청사 벽엔 낙서·코끝엔 악취…
내일은 99주년 3·1절…충칭 르포

별도 안내판 없어 ‘앱’으로 찾아
윗층엔 페인트통·뒷편엔 빈병들
방문객들 “中 관리소홀 아쉽다”
시내 항일유적 대부분 철거·방치


[충칭(중국)=김성우 기자] ‘대한민국림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

하얗 글씨가 써박힌 육중한 문을 들어서면, 보안검색대가 등장한다. 소지품 가방을 올려놓고 게이트를 통과해야만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이곳은 임시정부가 광복을 맞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중국 충칭의 롄화츠 임시정부 청사다. 별 다른 안내판이 없어서 현지 지도애플리케이션을 통해야만 찾아올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10동 남짓의 건물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항상 공사중이다. 99주년 3.1절을 앞두고 기자가 방문한 지난 17일, 임시정부 요인들의 생활을 전시하는 진열관 1호관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임시정부 청사 뒷편 벽이 벗겨진 상태로 보드마카로 낙서가 돼 있는 모습.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충칭에서 파견근무중인 직장인 정호식(30) 씨는 “4번째 방문하는데 이곳은 올 때마다 공사는 진행되지도 않으면서 가림막이 처져 있다”고 말했다. 정 씨에 따르면 보안검색대도 최근에야 설치가 된 것이다.

화학물질 병들이 너부러져 있는 모습.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청사 후미진 구석지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청사 꼭대기층에는 다 쓴 페인트 통이 굴러다니고, 색 바랜 청사 뒷편엔 낙서가, 근처에는 화학물질을 담았던 병들이 너부러져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수는 하루 최소 50여명에서 많게는 200여명 수준이다. 주재원ㆍ교민, 혹은 한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다.

부산에서 관광차 이곳을 방문했다는 박은혜(58ㆍ여) 씨는 “팻말도 없고, 위치에 대한 설명도 부족해 찾아오기 쉽지 않았다”면서 “청결하게 관리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기간 가장 활발하게 독립운동이 벌어지며, 현재도 해외 독립사적지 1005곳 중 464곳으로 가장 많은 항일유적지가 남아있는 중국. 현지의 유적지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주나 일본 등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중국 정부가 유적지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지만,타국 유적인만큼 관리가 소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롄화츠 청사는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지정한 충칭 시내의 항일유적지는 총 20곳인데 청사를 제외한 다른 곳들은 이미 철거됐거나 방치된 상태다. 이곳 유적지들은 광복군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실제 거주했던 숙소들, 조선민족혁명당ㆍ조선의용대 본부가 있던 자리와 독립운동가들의 묘지 등 보존 필요성이 높은 장소들이다.

아무렇게나 방치된 광복군 사령부 부지의 모습.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

기자가 최근 방문한 유적지들도 그랬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복원을 약속받았던 광복군 사령부 부지를 포함한 여러 유적지들은 사실상 존재하는지조차 확인이 쉽지 않았다. 과거 한인촌과 광복군 보충대가 위치했던 충칭 파현의 토교촌도 마찬가지. 현재 한인촌은 폐공장 부지 가운데 위치해 있다. 하지만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유적지임을 알려줄 뿐, 다른 흔적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위치가 ‘토교장정가 146호’라고만 알려진 광복군 보충대는 찾을수 조차 없었다. 현지 주민들에게 위치를 거듭 물어봣지만 ‘모른다(不知道)’는 대답만이 나왔다.

독립운동 유관단체들도 항일유적지가 방치된 현상황에 대해 크게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한 단체 관계자는 “탐방을 가서 보면 상당수 유적지들이 공사판 가운데 있거나, 민가로 사용되는 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면서 “중국 가이드가 따라붙어 안내해주는 유적지들이 이정도 수준인데 다른 곳들은 어떨지 아쉬운 심경”이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이곳을 선뜻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해외 사적지의 관리를 맡는 국가보훈처 한 관계자는 “중국은 사적지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한중관계가 조금 개선되면 사적지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아닐 때는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보훈처가 중국 내 사적지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쏟지만, 중국 당국의 외면으로 차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주와 일본 지역의 유적지는 각국 정부와 공조를 통해, 현지 한인 교민과 대사관들이 관리에 신경을 쏟고 있지만 중국의 경우 이같은 관리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곳을 직접 찾은 이유도 이때문이란 중론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이곳 충칭을 방문해 임시정부와 광복군 사령부 유적지를 둘러봤다.

이후 천민얼 충칭 당서기와 만남을 갖고 사실상 폐허가 되어가는 광복군 사령부 부지의 복원을 확언받았다.

zzz@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