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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이 더 힘든 지하철 기관사 “시민의 발, 쉴 순 없잖아요”
명절 반납…고향 생각은 뒤로
“우리가 곧 서울의 첫 인상”
“덕분에 명절 잘 쉬러간다”
승객들 한마디에 피로가 싹


“안전 운행만 생각합니다. 명절 분위기에 젖으면 사고 가능성만 커집니다.” 올해로 6년차인 정용식(34) 기관사는 이달 15~18일 설 연휴에도 평소처럼 서울 지하철을 운전한다. 그는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기관사가 쉬면 교통을 누가 책임지겠느냐”며 “시민의 안전한 귀성길을 위해 묵묵히 내 할일을 하겠다”고 했다.

‘시민의 발’ 지하철을 책임지는 기관사는 설 명절에 더 바빠진다. 평소보다 북적대는 지하철을 통제해야 하니 가슴이 철렁할 때도 많다. 들뜬 명절 분위기를 뒤로하고 운전석 문을 연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 안전수칙만 되새길 뿐이다.

5호선을 운행하는 정 기관사는 4일 연휴 중 3일을 근무한다. 하루 근무시간은 최대 8시간이다. 직업 특성상 쉴 수 있는 기관사는 한정돼 있다. 그럼에도 지난 추석 명절에 배려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진해서 근무하기로 했다.

정 기관사가 설 명절에 지하철을 운전할 때 가장 염려되는 일은 승강장 안전문 끼임사고다. 가족단위 승객, 양손 가득 짐이 있는 승객이 많아짐에 따라 발생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는 “특히 선물세트 등 큰 짐이 있는 승객을 주의해서 보는 시기”라며 “작은 사고가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는 생각에 예의주시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없이 승객의 귀성길을 도운 날은 홀가분함을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종종 경북 안동에 있는 가족이 생각나면 마음을 다잡는다. 특히 부모님이 이런 사정을 알고 전폭 지지하는 덕에, 더욱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물론 일을 하다보면 난감한 처지에 놓일 때도 있다. 설 연휴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지하철을 처음 타는 이들이나 취객이 늘어나고, 역을 놓쳤으니 세워달라는 등 당혹스러운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정 기관사는 “안전을 지키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드린다”면서도 “간혹 진이 빠질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설 명절을 미뤄두고 안전운행을 복창하며 지하철에 타는 이가 또 있다. 기관사의 파트너인 차장이다.

이제 16년차를 맞는 김석영 차장(56)은 설 명절에 여러 기관사와 함께 3호선을 지킬 예정이다. 차장은 기관사가 지하철을 운행할 때 옆에서 안전 점검, 민원 대응 등 일을 맡는 직책이다.

김 차장은 “사실 직업의식 없이 매년 명절을 반납하긴 쉽지 않다”며 “우리 직원들이 서울의 ‘첫 인상’이라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했다.

설 명절에는 분실, 길 안내 등 민원을 처리하기 바빠 식사도 도시락으로 때울 때가 많다. 일부 승객이 무심코 던진 말에 가슴이 저리기도 한다. 그래도 김 차장이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은 보람이 있어서다.

김 차장은 “‘덕분에 명절 잘 쉬러간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며 “간혹 고생하신다며 사탕 등을 건네는 승객도 있는데, 그 마음에 그간 쌓인 피로가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매년 이해하고 격려하는 가족에게 고마울 뿐”이라며 “언젠가는 설 명절에 가족과 윷놀이도 하고, 제주도도 가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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