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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있다 없다?…대법원 판단 주목
-李 재판 1ㆍ2심서 갈린 安수첩 증거능력 대법원서 판단될 듯
-‘재산국외도피 의미’ ‘부정청탁 여부’도 대법원 심리 가능성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관한 최종 판단은 결국 대법원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특히 대법원은 1, 2심에서 판단이 엇갈린 ‘안종범 수첩’을 증거능력 유무를 다시 한 번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이 부회장 측은 지난 5일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친 뒤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다.

항소심에서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요인이 연쇄적으로 작용했다. ‘스모킹 건’으로 불린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기록이 증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특검이 공소사실의 뼈대로 삼은 ‘삼성 승계를 이유로 한 부정한 청탁’ 구조도 약화됐다. 형량이 가장 무거운 혐의인 재산국외도피 인정 범위도 좁게 해석된 점도 크게 작용했다. 대법원은 사실관계 판단을 하지 않는 ‘법률심’이지만, 이 세 가지 쟁점은 모두 법리적으로 다툴 요소를 갖추고 있어 최종 결론을 내리는 데 변수가 될 수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특히 ‘안종범 수첩’은 1심 뿐만 아니라 다른 국정농단 사건에서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 반면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기록을 증거로 사용하지 않았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핵심증거인 안종범 수첩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가 각각 근거를 들어 증거능력을 달리 평가했다”며 “대법원에서 수첩의 증거능력 관련해 일괄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이 남긴 기록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꼼꼼히 기록돼 영상이나 녹취가 없는 박 전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비공개 단독면담 내용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증거로 꼽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수첩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봤다. ‘전해들은 말을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말을 듣고 받아적은 것에 불과한데,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이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증거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 부회장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 판단을 뒤집은 결론이다. 1심은 ‘박 전 대통령 발언을 그대로 수첩에 받아적었고 단독면담 당일 나온 이야기도 박 전 대통령에게 듣고 수첩에 적었다‘는 안 전 수석의 법정 증언에 주목했다. 이같은 안 전 수석의 진술을 고려하면 업무수첩을 독대 상황을 가늠할 정황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영재센터 부당지원’, ‘안종범 뇌물’, ‘광고사 강탈’, ‘이대 입시비리’, 사건을 맡았던 여러 재판부들도 같은 이유로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이 부회장이 최순실 씨의 독일법인에 뇌물 36억여 원을 보낸 것을 ‘재산국외도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심과 2심에서 똑같은 대법원 판례를 전혀 다르게 해석해 유무죄 결과가 갈렸기 때문에 대법관들이 바로잡을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1ㆍ2심은 모두 2005년 대법원 판례를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산국외도피죄를 “법령에 위반해 국내 재산을 해외로 이동한다는 인식과 자신이 해외에서 임의로 지배ㆍ관리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행위라는 인식을 가지고 국내 재산을 해외로 이동시키는 것”이라 규정한 판례였다.

1심은 ‘법령에 위반해’라는 점에 주목해 이 부회장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이 뇌물을 바치기 위해 법령을 위반해 국내 재산을 해외로 반출했을 뿐 아니라 송금된 돈이 독일에서 임의로 지배관리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항소심은 ‘자신이 해외에서 지배관리할 수 있는 상태’라는 문구를 이유로 들어 이 부회장의 혐의를 무죄로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해외에 있는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공여한 것일 뿐 자신의 재산을 도피시키려 한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여부도 대법관들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항소심은 사실상 삼성 승계작업 존재를 부정했지만,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 합병을 도운 혐의로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져 판결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향후 대법관 13명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넘겨질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은 대부분 사건을 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소부에서 결정하지만, 판례를 바꿔야하거나 대법관 사이 이견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한다. 이 부회장 사건의 경우 1ㆍ2심이 대부분 혐의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렸고, 법률 쟁점도 복잡해 전원합의체에 넘겨질 가능성이 높다. 재산국외도피죄의 경우 판례를 남겨야 할 필요성도 있다. ‘최순실 특검법’에서는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을 3개월 이내 끝내라는 취지로 정하고 있다. 대법원이 오는 8월 대법관 3명 퇴임 전에 이 부회장 사건을 매듭지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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