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미투” 남성피해자들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신입때 여성 선배 야릇한 행동”
남성이 피해 알리는데 더 소극적

6년차 직장인 김모(34) 씨는 몇 년 전 회사 선배가 아는 거래처 사람을 포함한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진 기억만 생각하면 수치스럽다. 환갑 가까이 된 거래처 사람이 헤어지기 직전 김 씨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며 입술에 뽀뽀를 한 것.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김 씨는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김 씨는 “어머니 뻘인 거래처 사람이 양 손으로 내 볼을 잡고 기습 뽀뽀를 하는데 당할 수 밖에 없었다”며 “회사 선배와 친한 분이었고, 나 때문에 당시 분위기가 어색해 질 것 같아 불쾌한 티조차 낼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요즘 미투 캠페인을 보면 나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지만 남성이다 보니 참여할 꿈도 꾸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국내에도 ‘미투(Me too)’ 바람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남성들도 직장 내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남성이라는 이유로 ‘미투’조차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부분의 남성들 역시 직장 내에서 소수로 머물 때 성추행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다.

3년차 직장인 이모(31) 씨도 입사 직후 가진 첫 팀 회식자리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당시 팀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팀원들이 대부분 여성이었고 자신과 다른 신입직원 2명만 남성 직원이었다. 술자리를 마치고 노래방에서 가진 2차 회식에서 김 씨는 선곡할 노래를 찾고 있던 찰나 한 여성 선배가 옆에서 다리를 꼬더니 한 쪽 다리를 이 씨의 다리 사이에 넣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김 씨는 노래를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상황을 모면했다.

김 씨는 “당시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면서도 “신입사원 입장에서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조직에서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조용히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겪은 것이다 보니 어디에다 말할 수도 없었고, 남자인 내가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남성들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을 당해도 피해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2016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조사 대상자의 37.9%에 불과했는데 여성의 경우 48.1%, 남성은 14%만이 피해사실을 말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의 경우 피해 사실을 알리는데 훨씬 더 소극적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 내 성폭력의 본질은 남녀 문제가 아닌 상하 권력 문제”라며 “성별이나 나이 등의 요소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영역에서는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rene@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