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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부회장 2심서 집유 석방] 법원 “정경유착 아닌 최고 권력자의 삼성 겁박”
고법, 36억여원 뇌물혐의만 유죄
‘포괄적 승계작업’ 대가 인정 안해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건 재판부가 사건의 본질을 ‘요구성 뇌물’로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이 최고 권력자 압박에 못 이겨 뇌물을 건넸을 뿐 기업 현안이나 승계 작업을 청탁하지는 않았다는 게 항소심 판단의 골자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정형식)는 5일 이 부회장에게 89억 상당 뇌물 혐의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절반에 못미치는 36억여 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삼성이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지원한 220억여 원, 한국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16억 2800만 원, 최 씨에게 지원한 명마(名馬) 세 마리 값과 부대비용은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결과적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 대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단독면담에서 승마 지원 관련해 이 부회장을 강하게 질책했다는 점’을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요소로 삼았다.

뇌물 혐의 상당 부분이 무너진 이유는 항소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포괄적 승계작업’을 인정하지 않은 게 바탕이 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1심은 삼성이 재단과 최 씨에게 거액을 건넨 이유로 ‘포괄적 승계작업’을 꼽았다. 이 부회장이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해 정부의 혜택을 바라고 최 씨와 재단에 거액을 줬다는 것이다. 1심은 이같은 특검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은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이나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이 성공한다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강화될 수는 있지만 사후적인 평가에 불과하다는 근거를 들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부정한 청탁’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고 삼성의 미르ㆍK스포츠재단, 영재센터 후원금을 모두 제3자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청탁 여부를 따지지 않고 돈을 건네면 성립하는 직접 뇌물과 달리 제3자 뇌물죄는 직무관련성이 있는 공무원에게 대가를 바라고 부정한 청탁과 함께 돈을 건넬 때만 성립한다.

다만 삼성이 최 씨 측에 건넨 승마지원금 가운데 36억여 원은 그대로 뇌물로 인정됐다. 승마지원금에는 단순 뇌물죄가 적용돼 ‘부정청탁’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유죄 판단이 가능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광범위한 권한은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직무와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돼있고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이나 최 씨에게 사적으로 승마지원을 해줄 이유가 없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직무 범위는 포괄적이라 세세하게 대가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포괄적 뇌물죄’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1심은 삼성이 최 씨에게 지원한 명마 세 마리 값을 포함해 총 72억 원을 뇌물로 봤지만, 항소심은 말값과 부대비용은 뇌물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삼성이 최 씨에게 명마 3마리를 준게 아니라 전속으로 빌려타게 한 것이라서 이를 뇌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대신 최 씨가 말을 무상으로 빌려탄 이익을 뇌물로 볼 수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액수를 산정하지는 않았다.

뇌물공여 혐의 상당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연쇄적으로 횡령ㆍ재산국외도피ㆍ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뇌물에 해당하는 36억여 원에 대해서만 횡령 혐의가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1심에서 인정한 81억 원에서 큰 폭으로 줄어든 수준이다.

특히 법정형이 가장 높은 재산국외도피 혐의가 전부 무죄로 결론나면서 이 부회장의 형량은 큰 폭으로 줄었다. 50억 미만의 재산을 국외로 도피시킨 혐의가 인정되면 이 부회장은 최소 징역 5년에 처해질 수 있어 실형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모두 무죄 판결했다.

재산국외도피죄는 자신의 재산을 국외로 빼돌렸을 때 성립하는 범죄인데, 이 경우는 국외에 있는 최 씨에게 뇌물을 줬을 뿐 자신의 재산을 도피시킬 의도는 없었다는 게 항소심 판단 요지다. 이는 삼성이 최 씨에게 뇌물을 바치기 위해 외환거래 신고를 않고 독일로 돈을 보냈기 때문에 혐의를 유죄로 봐야 한다는 원심 판단과는 배치된다. 

고도예 기자/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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