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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동걸린 삼성 3.0…주주ㆍ사회적 책임ㆍ미래로 향한다
- 1년 '옥중 구상' 상생ㆍ사회적 책임의 가치로 경영철학에 투영될 듯
- 삼성전자 하드웨어 강자 경쟁력 기반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결합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지난 1년은 나를 돌아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 세심히 살피고 열심히 하겠다.”

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353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치소를 나와 처음으로 한 말이다. 1년 간의 수감생활이 이 부회장의 차후 경영 구상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임을 짐작케 한다. 재계에서는 향후 삼성의 색깔이 뿌리부터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예측한다. 1년 간의 ‘옥중숙고’가 이 부회장의 경영철학에 깊게 투영될 수밖에 없어서다. 이른바 이 부회장이 그리는 ‘삼성 3.0’의 시동이다.

창업주 이병철 선대 회장이 연말마다 일본 도쿄로 건너가 유망업종을 탐구했던 ‘도쿄구상’이 1.0이라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이 2.0이었다. 이어 주주와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기업,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경쟁력을 가진 소프트웨어 기업을 핵심 가치로 한 이재용식 ‘뉴삼성 3.0’ 시대의 개막이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주주ㆍ사회와 함께 간다…상생의 가치= 근본적으로 달라질 가치는 상생 경영에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제 꿈은 삼성을 이어받아 열심히 경영해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제가 받아왔던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잇달아 발표되는 주주친화정책이나 사회공헌 사업 재정비는 ‘기업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와 무관치 않다. 영업이익 50조원 돌파라는 ‘창립 80년’이래 최고 실적을 발표한 날 삼성전자는 주식 50대 1 액면분할을 결의했다. 주주친화정책을 시작으로 사회적 책임을 염두에 둔 이 부회장의 ‘옥중결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삼성전자가 수익을 많이 내서 주가가 올라가면 그 혜택을 보는 주주들도 많아지기 때문에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주가부양 효과 외에도 더 많은 국민의 응원을 받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통큰 배당도 연장선이다. 삼성전자는 실적발표날 지난해 잉여현금흐름(FCF)의 50%인 5조8000억원 전액을 배당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에는 향후 3년간 매년 9조6000억원 수준 배당금을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앞으로 회사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주주와 함께 나누겠다는 강한 의지의 발로였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며 심화된 반(反)삼성 정서 해소와 실추된 기업 이미지 회복의 첫 단추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서 찾는다. 이미 이인용 삼성사회봉사단장(사장)은 사회공헌 사업 재정비와 새판 짜기에 나선 상태다. 이 단장은 “사회공헌 활동은 이제 기업들이 부수적으로 하는 선택이 아니라 경영에 필수적인 부분이 됐다”며 “앞으로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뜻을 담아 어떻게 더 사회에 공헌할지 깊이 고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일주의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삼성그룹의 정체성도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창업초기부터 이어져온 ‘제일주의’와 ‘관리의 삼성’이 ‘선택과 집중’ ‘창의적 삼성’으로 진화한다. 1980년대 삼성그룹은 진출한 사업의 모든 분야에서 1등을 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제일모직, 제일합섬, 제일기획 등 계열사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스마트폰 사업에서 ‘IT공룡’ 애플을 꺾었고, 반도체 사업에서는 24년간 왕좌에 있던 인텔을 끌어내렸다. TV사업에서는 ‘전자왕국’ 소니를 무너뜨렸다. 모든 업종, 모든 사업에서 1등을 하겠다는 기존의 목표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 3.0의 정체성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이 부회장은 2014년 말 삼성SDS와 제일모직을 잇따라 상장시키고, 2015년 9월에는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2014년 11월에는 삼성테크윈을 비롯한 석유화학 및 방산 부분을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2015년 하반기에는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와 삼성정밀화학 등을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두차례의 빅딜을 통해 이 부회장은 전자를 주축으로 한 첨단 산업에 ‘집중’하는 삼성의 미래를 보여줬다.

삼성그룹 복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 부회장은 앞으로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 자율에 맡기고 자신은 삼성전자 경영에만 집중해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할 것이 유력하다.

투명경영도 강화된다.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미전실) 해체 이후 이사회 중심 경영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삼성그룹의 경영은 오너-미래전략실-계열사 사장단 3각체제로 이뤄져 왔다. 재계에서는 미전실 자리를 이사회가 대신하면서 투명성을 높인 시스템 경영 2막이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재판에서 “앞으로 그룹 회장이란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며 삼성그룹 회장이 아닌 삼성전자 회장이나 이사회 의장으로 남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시사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1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던 시대는 지났다”며 “법적 책임이 명확한 이사회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지배구조 개선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공정위원회가 내달 23일로 예정된 주주총회까지 시한을 주고 자발적 개선 노력에 압박을 가하는 만큼 조만간 청사진이 나오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삼성전자의 미래…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강자로=이재용호(號)가 이끄는 삼성의 미래 핵심 키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이건희 시대의 ’신경영’이 하드웨어 측면의 도약과 성공이었다면, 이재용의 뉴삼성은 하드웨어의 강력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소프트웨어와의 결합을 통해 융합형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 분야가 ‘초일류 삼성’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이었다면, 모바일 결제서비스 ’삼성페이‘나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플랫폼 ‘빅스비’와 같은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살아야 21세기 디지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부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인 전장(전기장비)업체 하만이나 모바일 결제솔루션 루프페이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년간 이렇다할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없었던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석방됨에 따라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의미있는 M&A에 다시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평소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자 지적재산이 기업경쟁력을 결정짓는 시대다. 기업은 단순히 제품만 파는 단계에서 나아가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제시할 ‘ ‘뉴삼성 3.0’ 의 경영철학이 어떻게 구현될 지 국내 기업은 물론 전 세계 IT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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