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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지에 연필로 탄생한 ‘올드 상하이’…2018년 국제사회를 엿보다
PKM갤러리, 조덕현 개인전 ‘에픽 상하이’
2015년 일민미술관 ‘꿈’전 이은 프리퀄 전시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누구에게나 불꽃같은 한 때가 있었을 것이다. 혹자는 전성기라고도 하고, 혹자는 청춘이라고도 한다.

2015년 조덕현 작가에 의해 탄생한 가상인물 조덕현(1916~1995)에게도 그러한 빛 나는 날이 있었다. 3년전 일민미술관에서의 전시 ‘꿈’이 가상인물 조덕현이 독거노인으로 죽어간 쓸쓸한 말년을 조명했면, 2018년에는 그의 젊은날이 소환됐다. 영화의 ‘프리퀄’과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가 작가 조덕현(61ㆍ이화여대 교수)의 개인전 ‘에픽 상하이’를 개최한다. 전시엔 폭 5미터 80센치, 높이 3미터 90센치의 초대형 회화 2점을 포함한 회화 작품과 사진, 그리고 영상설치작업 등 신작 18점이 선보인다. 

조덕현, 메타포5, 피그먼트 프린트, 38 x 28 cm, 2018. [사진제공=PKM갤러리]
조덕현, 1935, 장지에 연필 582 x 391 cm, 2017. [사진제공=PKM갤러리]

전시의 무대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올드 상하이’다. 20세기 초반 동서양의 자본이 밀집되며 세계 5대 도시로 성장했다가 어느순간 퇴색해버린 그곳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조덕현 작가는 “동양과 서양, 전근대와 근대, 식민과 탈식민 등 여러 가치가 극단적으로 대립해 계층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온갖 문제가 끊이지 않아 범죄와 테러, 국지적 전투가 빈번했던 ‘올드 상하이’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도 오버랩 된다”고 설명했다. 시간은 1930년대로 특정됐다. 상하이의 전설적 여배우 완령옥, 조선에서 건너가 영화 황제로 군림한 김염, 당시 최고 가수였던 저우쉬엔의 시대기도 하다.

이야기는 조덕현이 중학교 선생으로 부임하는 삼촌을 따라 상하이에 입성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인력거를 끌며 일당을 버는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날 김염을 태우고, 그의 도움으로 상하이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저우쉬엔의 음반을 사러 줄을 섰다가 상하이 토박이 ‘홍’과 만난다. 그 둘은 서로의 계급과 배경의 극단적 차이에 이끌려 소통하고, 조덕현이 조선으로 떠나며 둘의 인연은 결말을 맞는다. 이같은 이야기는 상하이 출신 소설가 미엔미엔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3년전 일민미술관에서 소설가 김기창이 협업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조덕현, 미드나잇 상하이 1, 장지에 혼합재료, 100 x 100 cm, 2017. [사진제공=PKM갤러리]
조덕현, 꿈꿈, 장지에 연필, 아크릴릭, 582 x 391 cm, 2017. [사진제공=PKM갤러리]

초대형 회화들은 거대한 서사의 단면이자 중첩된 시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35엔 당시 상하이의 최고 핫 플레이스였던 ‘백락문’(百樂門, 파라마운트)가 전면에 등장하는 가운데, 김염과 완령옥이 등장하는 영화 촬영이 한창이다. 올드상하이의 재연이다. 그러나 김염의 옆자리를 지키는 건 백발이 성성한 그의 아내 친이(95)다. 더불어 이들을 바라보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관객까지 등장한다. 이처럼 여러 시간대가 압축적으로 혼재된 이 작품은 장지에 연필로 탄생했다. “종이와 연필이라는 회화에서 가장 기본되는 재료로 솔직하고 대담하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내가 다루는 이 이야기는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다. 다만 전문적 미술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관객이라도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은 언어로 쉽지 않은 질문을 하고 있다”

작가는 전시 자체가 조덕현의 삶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했다. 회화, 서사, 영상, 사진 등 모든 것이 그가 살았던 올드상하이와 사람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곳곳에 숨은 역사적 흔적들과 현재와 연결고리는 눈 밝은 관객을 위한 선물이다. 3년전 예고한 대로 젊은 날의 조덕현을 만났으니 이제 다음전시는 그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전체 3부작을 염두해 두고 제작했고 다음 이야기는 1950년대, 조덕현이 고국으로 돌아와 한국 영화계에서 벌어진 일을 다룰 것”이라고 했다. 특유의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그려낼 전후 격변기의 한국사회가 기대된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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