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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 말란 것 같다"...당국 압박에 가상화폐서 발 빼는 은행들
정부 가이드라인 준수 어려워
신규계좌 ‘자체적’ 금지ㆍ유보
거래소와 계약도 해지해 갈 듯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오는 30일부터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실시되지만 신규 거래를 틀 방법이 막혀 사실상 ‘고사’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이 계좌를 쥐고 있는 은행들을 전방위로 압박하면서 ‘알아서’ 거래 축소를 택하고 있어서다.

10여일간 진행해온 금융 당국의 검사가 지난 23일 끝나고 오는 30일부터 실명제 도입을 전제로 가상화폐 거래가 재개된다. 그러나 시중 은행들 중 3곳은 신규계좌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고, 3곳은 아예 가상화폐 계좌 제공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실명제가 도입되더라도 시중 은행에서 신규로 계좌를 만들어 가상화폐 거래를 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IBK기업은행은 신규 계좌 제공은 잠정 유보하기로 했다. 기존에 가상화폐 거래 계좌가 있던 고객들만 오는 30일부터 실명 확인을 받은 후 기존 계좌를 이용할 수 있다. KB국민과 하나은행 등은 아예 가상화폐 거래 계좌를 제공할 계획을 잡지 않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거래 실명제 도입과 관련한 시스템은 마련됐지만 당분간 계좌 제공 등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7월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고객 정보가 유출된 사건 이후 가상 계좌를 폐쇄했다. KEB하나은행은 글로벌 금융사들과 손잡고 자체 블록체인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계약은 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자체 전산망 교체로 인해 오는 30일까지 실명제 구축이 어려워 당분간 가상계좌 제공을 하지 않기로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 가이드대로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준수해 운영하려면 인력도 보강해야 하고, 시스템 교육도 해야한다”며 “신규 거래까지 받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개인 투자자가 거래소 법인과 같은 은행 계좌를 이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사실상 신규 거래를 막는 조항이다. 시중은행들은 고객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쓰이지 않게 하기 위해 입출금 계좌를 만들려는 고객에게 그 목적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강화되는 본인확인 규정을 도입하면 영업점 창구에서 ‘가상화폐 거래가 목적‘이라는 고객에게 신규 계좌를 제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은행들이 가상 계좌 제공을 대폭 축소하며 ‘디리스크(derisk)’에 나선 것은 당국의 매서운 규제 때문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3일 검사 결과 발표에서 “(은행들의) 가상계좌 제공이 전혀 내부적으로 위험관리 안되고 협의절차 없이 영업부에서 그냥 나간 경우 많다”며 “앞으로 그렇게 되면 은행들이 자금세탁 관련한 심각한 평판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가이드를)다 지킬 자신 있으면 하고 그럴 자신 없으면 자체판단할 사항”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상 “알아서 하라”는 ‘엄포’다. 금융권에서는 “결국 (계좌 제공) 하지 말라는 소리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말까지 나온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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