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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위안부 문제-⑥] 일본군 위안부 운영실태 알고도 전범 기소 안한 美
-김득중 국편위 편사연구관 “위안부문제 해결하려면 제국주의 반성 선행돼야”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일본의 패전 전후로 미군이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실태를 담은 심층조사보고서인 ‘ATIS 연구보고서 120호’ 전문이 공개된다. 해당 자료는 미군이 1942~43년 일본군 위안소 및 위안부 피해 현황에 대해 파악했음을 증명하는 자료로, 일부는 1990년대 중반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해당 보고서를 포함,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문서고에서 추가로 발굴한 위안부 관련 사료를 엮은 간행본을 곧 내놓을 예정이다. 헤럴드경제는 관련 문서를 발굴한 김득중 국편위 편사연구관을 인터뷰했다. 

 
[사진=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미국 정부의 위안부 관련 자료는 어떻게 발굴하기 시작했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는 주로 일제시대 자료를 발굴하면서 했는데,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연유가 좀 있다. 국편위에 있으면서 주로 담당했던 것이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미국자료를 발굴, 추적하는 게 주업무였다. 12년이 벌써 넘었다. 그래서 미국의 자료상황을 잘 알고 있는 형편이었다. 어느날 위안부 문제 얘기가 나왔는데, 미국쪽에도 위안부 자료가 많은데 사람들이 모르거나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생각해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해 시작을 하게 됐다.

2015년 1월~2월 사이에 서울대 인권센터와 함께 조사를 시작했다. 그때 조사해서 40~50건 자료를 새로 발굴했다. 몇달 사전조사를 하고 2~3주 동안 현지에서 한 것인데 생각보다 많은 자료가 발굴돼 힘을 얻고 사업을 지속하게 됐다. 이걸 붙들고 노력하면 더 많은 자료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위안부ㆍ전쟁범죄 편찬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계획서를 올려 2016년 1월달부터 위안부ㆍ전쟁범죄 자료수집 편찬사업이 시작됐다.

-위안부 관련 미국자료 발굴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위안부를 연구하는 미국인 연구자들은 미국자료를 많이 인용하지만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실태를 연구하는 지형을 보면 주로 일본에서 유학을 해 일본어에 능숙한 사람들이 연구에 적극 참여할 수밖에 없다. 사료적 가치로 보면 당연히 일본 자료가 풍부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하지만 미국자료나 외국 자료의 경우 연합군의 자료이기 때문에 일본과 적의 위치에서 위안부를 바라봤고, 일본군이 감추려고 했던 사실이나 일본군 문서에서 얘기하지 않았던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위안부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를 한 사람들을 꼽아보면 10명이 안된다. 인력풀이 굉장히 적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협상력이 높아지려면 논리적인 베이스, 역사적 사실, 그리고 팩트에 대한 베이스가 튼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관련한 해외자료는 한국 연구자들이 위안부 연구 관련 독자적인 바운더리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시각이 발견됐나?

=복잡한 문제인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은 왜 사과하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 그럼 일본은 왜 사과하지 않는가. 전체 자료를 조사했을 때 일본은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식민지배국들이 사과 한 적이 없다. 위안부는 전쟁 때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식민지 확장과정에서 전쟁이 터졌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문제와 관련이 있다. 만약 일본이 제국주의 팽창에 대해서 잘못했고역사적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위안부 문제도 식민지 점령에 따른 전쟁범죄이기 때문에 사과를 할 것이다. 일본은 그러나 식민지 확장이나 팽창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 이렇게 반성이 없는건 모든 제국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떄문에 일본도 ‘다른나라 반성 안하는 데, 구미 제국이 반성했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위안부가 전후의 미군이 위안부 문제를 확실히 알았다는 점이다. 이걸 이번 사업을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군은 태평양 전쟁 때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확실히 알았음에도 전후 전범으로 기소하지 않았다. 위안부의 실상에 대한 전면적 조사를 미국이 했고, 장문의 보고서까지 낸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활용해서 위안부와 관련된 사람들을 전범으로 기소한다든가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입장에서는 면죄부가 됐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일본이 사과하거나 사죄하지 않는 상황에서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다. 어떤 면에서는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그 문제 자체로만 바라보지 않고 제국주의 역사, 식민지 점령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로 봐야 한다. 아주 크게 보면 20세기 역사가 흘러갔던 방향에 대한 국제사회의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사적 반성있어야 위안부 문제의 해결도 가능하다.

-국편위가 곧 발표할 간행본에 다뤄진 내용은 무엇인가, 주로 어떤 점에서 자료를 엮었나?

=이번에 내는 자료는 더글라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연합군번역통역국(ATIS)이 작성한 ‘연구보고서 120호’ 등이 담길 예정이다.

ATIS는 맥아더가 남서태평양지역 연합군총사령부 내 설치한 정보조직인데, 일본군 포로가 잡히면 심문을 하는 역할을 해왔다. 자료를 보면 일본군 포로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위안소 이야기가 나왔다. 전체 ATIS 심문보고서에 위안부 관련 실려있는 양은 많지는 않지만, 이걸 다 모아놓으면 어느 지역에 위안소가 있었는지 참고할 수 있었다.

기존에 공개된 자료 외에 새로 발굴한 ATIS 심문보고서도 있어 전부 번역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의 자료는 군위안부가 나온 부분만 끄집어낸 자료이기 때문에 맥락이 파악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연구자가 자료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자료 전체를 다 게재하고 전문을 다 번역했다. 이 자료 생산의 맥락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왜 위안부가 연합군 자료에 나오는지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발견된 위안소 지역도 있었나

=자료집에 마지막에 위안소 지도 다 부록으로 넣을 예정이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도 한 20여 군데의 위안소가 있었던 지역을 표시했다. 문서로 증명되는 것은 앞으로 나올 자료집에 꾸준히 추가할 예정이다. 이 자료집이 다 나오면 연합군 문서에 나오는 위안소 지도는 다 표시가 되는 것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에서는 지도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쪽과도 자료를 한번 종합해 제대로 된 지도를 작성해보자고 얘기했다.

- 연구보고서에 드러난 전형적인 ‘위안부 상’이라고 하면?

=식민지와 점령지가 다른데 일본군이 진출한 일정 규모가 되면 위안소를 세웠다. 일본군이 있다고 하면 위안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면 대부분 위안소를 세웠다. 국적도 굉장히 다양했다. 그런데 그 점령지 같은 경우 동남아 경우 현지인도 위안부 동원하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연합군 문서에서는 주로 조선인이 많이 보인다. 중국인도 있고, 가끔 일본인. 그리고 현지 여성들. 10대는 많지 않다. 연령대는 위안부의 신상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나오는 자료가 없다. 지금까지 발굴된 상세한 자료는 버마자료가 있다. 버마에 자세한 나이가 있는데, 평균적으로 20대 초반이 많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태평양 지역 전투에서 일본군 통신 감청과 포로 심문, 일본군 문서 번역 등을 담당한 연합군 번역통역부(ATIS)가 작성한 일본군 심문 보고서.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강제성을 진술할 수 있는 자료?

=일본이 프레임을 잘 짰다고 생각한다. 그 프레임에 함몰돼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정부는 강제성을 강제로 직접적 끌고가는 것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식민지 자체가 강제다. 식민지에서는 강제자체가 합법화된 상황이다. 식민국민들을 강제로 동원하려고 식민지를 지배하는 것인데 그것 자체가 강제인 것이다. 여기서 물리력을 사용했느냐 아니면 합법적인 형태로 했느냐 그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법을 통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사에 반할 수 있다.

그래서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식민지배 자체가 식민지에 사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만든 체제이고 동원하려고 만든 것이다. 동원을 쉽게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아주 유연하게 법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으면 강제적으로 헌병이나 경찰이 끌고 가지 않아도 동원할 수 있다.

-연합군이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 기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의 처리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ATIS 연구보고서 120호는 굉장히 유명한 자료로,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 중에서 위안부 자료 중 총망라된 것이다. 연구보고서 120호는 그 이전의 분산돼 있던 위안부 자료들을 다 모은 종합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미군이 이 연구보고서를 두번 작성했다. 1945년 2월과 증보된 자료를 11월달에 다시 만든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 보고서를 만든 다음 더 보강한 연구보고서는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보강된 보고서에 담긴 위안부 내용이 상당히 많다. 보고서가 작성된 과정을 보면 일본이 패전한 다음 전범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쭉 만들어 나가다가 작성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활용은 안 됐다. 결국, 미국은 위안부 문제를 기소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위안부, 위안소 설치나 위안부를 이용했다는 것이 죄목으로 걸려 재판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미국이 전후 처리과정에서 천황을 전범으로 기소하지 않은 것처럼 전후 적국이었던 일본을 재건하고 부흥시키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가 누락이 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당시 국제사회가 위안부라는 문제에 민감하지 못한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식민지배로 연결되는 거 같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ㆍ전쟁범죄 자료집은 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전쟁범죄를 같이 다룬다. 식민지 피지배국을 대상으로 한 지배국의 전쟁범죄 관련 연구가 지금까지도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심도 많지 않다. 이런 걸 통해서 식민시기에 대한 자료를 국편위가 적극 제공해주고 관련된 연구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연구자들이 국편이 내는 자료를 보고 연구를 하고 논문을 내고 이런 과정들이 돼야 한다.

-본격적인 연구 이뤄지지 않는 이유?

=전쟁범죄 재판은 연합군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미군, 영국군, 네덜란드군 등 구미권 자료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부분이 구미권 자료다. 다 영어로 돼 있는데, 그쪽 자료에 밝아야만 전쟁범죄 연구가 수월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이 안됐다고 본다.

-자료발굴은 어떻게 할 수 있나.

=그게 국편위가 하는 일이다. 미국자료를 본격 조사한지가 18년이 됐다. 그래서 이쪽에 노하우가 많다. 한국사와 관련된 근현대사 외국 자료를 찾는 것에 대한 상당한 노하우가 있다. 원하는 주제에 자료를 다른 기관보다 훨씬 빨리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18년 동안 노하우가 축적이 됐는데 국편위가 상당히 그런데서 특출함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자료를 찾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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