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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 블랙리스트’ 현실로… 원세훈 사건 재판부 동향 파악까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한 2심 결과 대법원이 청와대에 ‘해명’

-상고법원 반대 세력 ‘우리법 연구회’ 지목...“설득 안되면 압박”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대법원이 특정 성향의 판사 명단을 별도 관리했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실제 존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정치개입 사건 항소심 판사들에 대한 동향도 조사했던 것으로 드러나 일선 재판부 독립성을 크게 훼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부장판사)는 22일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가 기획조정실을 중심으로 다수 법관들에 대한 여러 동향과 여론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정황이 나타난 문건이 상당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라는 문서가 저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법원행정처가 판결 선고 전 청와대로부터 항소심 재판부 동향에 대한 문의를 받고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을 알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외부기관의 희망’에 대해 사법부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는 내용도 기재됐다. 여기서 ‘외부기관의 희망’이란 원 전 원장이 선거법 위반 부분에 대해 무죄가 나오기를 바라는 청와대의 바람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선 재판부가 판결한 결과를 두고 대법원이 사실상 사건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대신 ‘해명’을 한 셈이다. 조사위는 “이는 사법행정권이 재판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거나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고,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원 전 원장은 1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이 혐의가 인정되면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3명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한 현직 판사는 “행정처가 이런 짓을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며 “원세훈 사건 상고심 판결 진정성도 의심받게 생겼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대법원이 중점적으로 추진한 ‘상고법원’에 반대한 판사들의 동향도 조사했다.
 
같은해 5월 작성된 ‘상고법원 관련 내부 반대 동향 대응 방안’ 문건에는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핵심 반대 세력으로 지목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해 직접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상고법원 반대 판사들에 관해 ‘세미나 등을 개최해 입장 변화를 도모한다’는 내용 외에 ‘설득이 어려운 경우 압박책을 고려하는 방안을 검토함’이라는 표현까지 들어갔다.

조사위는 이밖에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 필요성을 토의한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개입 △사법행정권 개선을 위한 위원회 후보자 성향 분석 △인터넷상의 판사 익명 카페 동향 보고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특정 판사 외부 기고글 분석 및 소셜네트워크 댓글 동향 등을 직접적으로 다룬 문서를 다수 확보했다.

법원행정처가 광범위하게 판사 동향을 조사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나면서 법조계에서는 관련자들의 직권남용 등 형사처벌 필요성도 거론되고 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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