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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비업무 80세에도 할 수 있어 좋다”
무기한 정년보장·최저임금 준수
해고·전출 아파트 허락 받도록
용역업체와 계약때 못 박아
성북동아에코빌 훈훈한 동행


“월급 얼마 받는지 보다 나이 여든에도 하던 일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경비원 정태길(80) 씨)

“몸만 건사하면 계속해서 일할 수 있게 됐으니 짤릴 걱정보다 건강을 유지하는게 더 걱정이에요. 하하”(경비원 김준영(70) 씨)

성북동아에코빌 아파트 직원들이 지난 14일 방문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맞이하는 모습. 해당 아파트는 최저임금 우수 공통주택으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부 사용자와 고용자가 대립하는 가운데, 경비원 전원에 ‘무기한 정년’까지 보장하며 최저임금을 준수하기로 결정한 아파트가 있어 화제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아에코빌 아파트는 최근 관리비 인상을 감수하고 경비원 17명과 청소미화원 12명 등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기로 원만하게 합의해 최저임금 우수 공통주택으로 선정됐다.

해당 아파트가 보기 드문 합의를 이끌어낸 비결은 주민과 경비원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며 도달안 ‘절충안’에 있었다. 경비원 중에서도 고령인 70세 이상 대상자에게도 본인이 원할 때까지 해고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해 ‘안정성’에 초점을 뒀고 휴게시간은 30분만 늘렸다.

서성학 아파트 관리소장은 “고령의 경비원들은 시장에서 선호하는 5060 세대에 밀려 그만두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10년, 15년 오래 근무하게 해달라는 이런 분들과 절충안을 찾은 것”이라며 “(고령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휴게시간을 늘리기도 하는데, 무조건 잘못된 사고로만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곳 아파트는 최고령 경비원이 80세다. 경비원들의 평균 연령도 67.5세로 50대 직원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편이다.

주민들의 금전적 부담을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최소화한 현실안도 이러한 결정을 도왔다. 정부보조금을 신청해 금전적 보조를 받고 난방체계를 개별난방으로 변경해 절감한 난방비용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관리비 부담을 상쇄했다. 최저임금 인상 후 인상된 관리비는 26평이 4990원, 33평이 6210원, 44평형은 8070원으로 주민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었다.

103동 동대표인 김유선(57) 씨는 “난방비 등 다른 부분에서 엄청난 절감을 했기 때문에 관리비는 소폭 올랐다. 오른 관리비보다 훨씬 큰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아파트 내에 산악회, 부녀회 등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임이 활성화돼 있어 아파트 일을 결정할 때도 논의와 소통이 잘 됐다. 사람 사이의 정이 있는 곳이어서 경비 아저씨와 미화원 아주머니도 가족처럼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경비원 김준영(70) 씨는 “아이들 얼굴만 봐도 누구집 아들딸인지 다 알고, 차량 호까지 외울 만큼 가까운 사이”라며 “오가며 인사는 기본이고 명절에 음식도 나눠먹는 가족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착한 아파트라고 용역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용역업체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착한 甲질’이 경비원들을 지켰다. 용역 측에 ‘경비원에 약속한 급여를 그대로 지불할 것’, ‘계약할 때 전원을 고용승계할 것’, ‘인사권은 용역업체에 있지만 해고나 전출시 아파트의 허락을 받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사용자인 아파트 측에서 용역에 이런 조건을 제시하니 업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고용 형태를 용역으로 전환하면서 ‘주민 편의를 위한 변경이니 법적으로 지불 의무가 없는 1년 미만 근로자의 퇴직금과 연차를 제공해 보전하자’는 결정도 했다.

아파트 측은 경비원과 주민의 상생이 결코 불가능한 이상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서 관리소장은 “오히려 경비원 월 급여가 190만원이 넘는 아파트는 보조금 대상이 안 된 경우도 있다. 경비원측도 양보를 했기에 가능했던 성과”라고 답했다.

최고령 경비원 정태길(80) 씨는 “여든에도 격일제 철야근무를 여태 하고 있다. 경기공고 시절 야구를 해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 지탱해주는 것 같다”며 “운동할 때 동료들을 아끼고 다투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주민들과 소통했더니 잘 봐준 것 같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고 싶다”며 웃었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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