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靑·외교부의 위안부합의 발표 ‘엇박자’
#. 1월 8일 오후 5시경. 2015년 한ㆍ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후속조치에 대한 정부 입장을 다음날인 9일 외교부가 발표한다는 소식이 청와대를 통해 알려졌다.

정작 외교부는 몰랐던 눈치였다. 같은 시각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ㆍ일 국장급 협의에서 우리 당국자는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에게 발표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겐지 국장은 기자들에게 “국장급 협의에서 그런 설명은 전혀 없었다”며 “외교협의보다 보도가 선행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정색했다.

외교부는 출입기자단에게 한참이 지난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발표소식을 공지했다. 

[사진=연합뉴스]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입장발표를 앞두고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 출입 기자들에게 어떤 조치 내용이 담겼는지 사전설명을 했다. ‘예탁’으로 떠돌았던 정부 예산 10억 엔에 관한 소문은 어느 순간 ‘반환’으로 보도돼 논란을 키웠다. 한 시간만에 정부는 공지를 했다. “반환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 9일 오전 외교부 출입기자단은 발표문을 미리 받을 수 없냐고 외교부 측에 문의했다. 외교부는 강 장관이 마지막까지 발표문을 수정하고 있다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엠바고 설정도 없이 강 장관의 발표문이 발표가 이뤄지기도 전에 이미 떠돌고 있었다. 이번 출처 또한 청와대였다.

9일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 합의에 관한 입장은 한ㆍ일 위안부 합의를 깨지 않는 선에서 합의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일본 정부가 ‘합의를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핵심근거인 출연금 10억 엔을 무력화한 절묘한 수였다.

비록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고, 일본 외무성이 외교채널을 통해 항의를 했지만 절제하는 눈치다. 통상 역사문제로 ‘대사급’을 소환해왔던 과거 패턴과 달리 일본 정부는 이번 발표에 대해서는 주일 한국대사관의 이희섭 차석공사를 외무성으로 불러들여 항의하며 ‘급’을 조절했다. ‘어쨌든 여성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국제사회가 일본으로 비난의 눈초리를 돌릴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절묘한 수는 전날 이른바 ‘청와대 관계자’의 정보유출로 빛이 바랬다. 한국 정부가 일본 외무성의 국장을 무시하고 다른 외교채널로 위안부 관련 정부 입장을 통지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한국의 ‘외교적 결례’로 한 국가의 국장급 인사가 무시당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무책임을 탓하기도 전에 일본 정부는 한국의 외교적 결례와 이번 발표를 결부시켜 ‘한국은 골 포스트를 움직이는 나라’라고 프레임하기 시작했다.

발표문의 사전유포도 마찬가지다. 당초 정부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계기에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떠안을 부담을 감안해 주무부처인 외교부에 발표를 맡기기로 했다. 모든 조치와 정보는 청와대에서 흘러나왔지만 책임은 외교부에 떠넘기고 있는 형국이다.

청와대에서 직접 나서야 보다 빨리, 효과적으로 외교현안이 처리되는 부분은 있다. 최종결정권은 대통령에 있기 때문이다. 괜히 정상외교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외교정책 방향을 설정할 때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힘이 실리는 것도 당연한 논리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와 같은 중대한 현안을 놓고 청와대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제스처가 나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가 한ㆍ일 국장급 협의 일정과 한ㆍ일 외교채널과의 소통현황, 그리고 국제사회가 인식하게 될 우리 정부의 정책결정 움직임에 대해 조금이라도 신경썼다면 정부의 입장이 발표되기 전날이나 강 장관이 입장을 발표하기 전부터 발표문이 떠돌아다니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안부 합의는 이제 시작이다. 9일 발표내용은 기존의 합의 틀 안에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얻도록 하겠다는 일종의 ‘공약’이다. 일본 출연금 잔금인 6억 엔을 재단에 남겨둔 채 정부 예산 10억 엔을 마련한다는 대안은 일본의 추가적 감성조치 및 합의이행을 이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히든 카드’이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에서 외교상황과 상관없이 그 카드를 휘둘러 버리면 일본의 사죄를 이끌어내기 위한 우리의 외교적 입지는 좁아질 뿐이다.

munja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