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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성의 신여성이 ‘82년생 김지영’에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신여성 도착하다’전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나쁜 여자와 착한 여자…. 여자를 나누는 카테고리는 크게 두개다. 나쁘다와 착하다. 문제는 평가주체가 생략됐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착하고 누구에게 나쁜가. 누구에게 안전하고 누구에게 위험한가. 
2.안석주,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 조선일보.1930.1.12.[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은 “우리는 너무 겸손하여왔다. 아니 나를 잊고 살아왔다. 자기의 내심에 숨어있는 무한한 능력을 자각 못했었고 그 능력의 발현을 시험하여보려 들지 않을 만큼 전체가 희생뿐이었고 의뢰뿐만이었다”는 자전적 고백을 통해 사회전체에 내재된 가부장적 시각을 비판한다. 

나혜석과 우리사이엔 10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2017년을 살아가는 ‘82년생 김지영’의 현재와 그닥 다르지 않다.

“그것 참 예쁘다. 장가나 안 들었다면…맵시가 동동 뜨는구나. 쳐다나 보아야 인사나 좀 해보지”라며 뭇 남성들의 평가를 받아야했던 ‘신여성’이 돌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서울 덕수궁관에서 개최한다. 19세기 말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근대 시각문화에 등장하는 ‘신여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최초의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강승완 학예실장은 “한국 근현대의 가장 큰 사회 변동의 이슈인 ‘신여성’을 통해 ‘근대성’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며 “서구와 남성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 시각에서 근대성을 다시 보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김은호, 미인승무도, 1922, 비단에 채색, 272х115cm, 플로리다 대학 사무엘 P. 하른 미술관 소장(제임스 A.판 플릿 기증).[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은 근대적 지식과 문물, 이념을 체현한 여성을 일컫는다. 1910년대 여자 일본유학생들부터 1920년대 초중등 교육을 받은 여학생과 여성인권을 주창하는 ‘신여자’를 뜻하는 경향이 컸으나 점차 양장을 입고 단발을 한 채 서구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모던걸’을 포괄하는 문화적 상징이 됐다. 세계사 차원의 ‘신여성’은 1890년대 영국의 ‘뉴우먼(NEW Woman)’에서 시작해 세계각국으로 퍼저나간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을 말한다.

전시에는 19세기말부터 1940년대까지 작가 68명의 회화 100여점을 비롯 조각, 자수, 사진, 영화, 잡지, 소품 등 500여점의 작품이 총망라됐다.

전시는 크게 3부로 구성된다. 1부 ‘신여성 언파레-드’는 주로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 매체, 가요, 영화등이 재현한 ’신여성‘이미지를,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에서는 창조적 주체로서 여성의 능력과 잠재력을 나혜석, 천경자 등 걸출한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보여준다.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5인의 신여성’은 남성중심의 미술, 문학, 사회주의 운동, 대중문화 등 분야에서 선각자 역할을 한 나혜석, 김명순, 주세죽, 최승희, 이난영 등 5명의 신여성을 집중 조명한다. 이들을 오마주한 현대작가들의 작품도 선보인다.

출품작들 하나 하나가 주옥같다. 천경자의 초기 채색인물화인 ‘조부’(1943)와 스스로를 짧은 머리와 보라색 양장을 입은 근대적 여성으로 묘사한 나혜석의 자화상(1928)등 유명작이 눈에 띈다. 더불어 김은호의 ‘미인승무도’(1922), 박래현 ‘예술해부괘도(1) 전신골격’(1940) 등 국내 미공개작 22점도 처음 공개됐다. 미인승무도는 조선미전 도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2004년 처음 소재가 확인되기도 한 작품이다. 플로리다대 미술관에서 대여해왔다.

동선을 따라 전시를 관람하다보면 100년의 시간에도 여성들의 삶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이 가장 놀랍다. 

경성의 신여성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사회적 차별에 맞서 싸워야만했다. 공부하고, 일하고, 삶을 즐기는 것이 모두 ‘최전선’이었다. 2017년의 82년생 김지영들은 육아와 자아사이에서 고민하고, 착한 여성이 되지 못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 한다. 여전히 여성의 삶은 어떤 의미로 ‘전쟁중’인 셈이다. 내년 4월 1일까지.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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