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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은 위대한 발명품의 총합 아닌 ‘우연·변이의 산물’
“문명은 계획할 수도 없으며 인류의 목적적 행위로 결정되지도 않는다. 인류 역사의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켜 온 것은 대개 부산물이었다.”

인류가 자랑하는 기술과 문화의 발전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궈낸 노력의 결과물로 인식된다. 즉 인간의 목적적 행위가 농업과 종이, 문자, 인쇄술 등을 낳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대 교수를 지낸 사회학자인 정예푸는 신간 ‘문명은 부산물이다’에서 이런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문명은 위대한 발명품들의 총합이 아니라 우연과 변이의 산물이다.


정예푸는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을 선도하고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진보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중국이 역사와 사회를 보는 시각에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문명사관의 집대성이랄 이 책에서 정예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여섯가지 문명으로 족외혼제, 농업, 문자, 제지, 조판인쇄, 활자인쇄를 꼽고, 어떤 우연의 경로들이 이런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살핀다.

가령 강한 신체와 이성을 갖춤으로써 인류를 현재의 최상위 포식자로 만든 족외혼제나 식량의 증산을 가져온 농업 발전은 인류가 의도하고 목적한 게 아니다. 농업만 하더라도 수렵, 채집과 비교해 편하지도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즉 농업은 이상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정착과 인구 증가가 맞물려 인간이 농업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조판인쇄 역시 부산물로 탄생한 위대한 발명 중 하나다. 조판인쇄의 시조는 도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선보인 도장은 6000여년 간 진흙 위에 찍는 형태로 이어져 왔다. 심지어 채륜 시대에도 도장과 종이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종이 등장 500년 후에나 돼서야 둘은 결합됐고 비로소 조판인쇄가 시작된다.

기술력이 필요한 활자인쇄도 우연의 산물로 여겨진다. 저자는 한국에서 유독 활자인쇄가 발달한 이유로 목판에 사용할 나무가 부족했고, 인쇄량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생물진화와 문화진화의 메커니즘에서 유사성을 찾은 저자는 문화에서 일종의 신기술과 신제도가 나타나면 실천과 연구, 반성을 통해 발굴되고 끊임없이 개발되면서 후천적으로 위대한 기술이 획득된다고 강조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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