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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부하면 뭐해, 다 새는데”…‘기부 포비아’ 현실로
-이영학 사건 등 이후 기부 위축
-“복지재단도 수동적 자세 벗어나야”

[헤럴드경제] 기부금을 들고 온갖 악행을 벌인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이후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연말연시 취약계층을 위한 기부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시민들이 여전히 ‘기부 포비아’(phobiaㆍ공포증)를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기부단체에선 “여태 이런 불황은 없었다”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기부의 ‘흑역사’는 이영학 사건 때 절정을 이뤘다. 중학생 딸 친구를 살해ㆍ유기한 혐의 등에 따라 구속수감된 이영학(35) 씨는 희소병을 앓는다며 10여년간 약 12억8000만원 기부금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사적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소외계층 아동을 후원한다며 5만명에게 받은 기부금 중 126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새희망씨앗 회장 윤모(54) 씨와 대표 김모(37ㆍ여) 씨의 사례도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기부를 꺼리는 분위기는 수치로도 확인 가능하다. 내년 1월까지 2개월여간 실시하는 사랑의열매 ‘희망 2018 나눔캠페인’의 모금액은 9일까지 648억원으로 목표액인 3994억원의 약 16.2% 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 2015년만 해도 같은 시기(12월9일) 목표액(3268억원)의 20.1%인 690억원이 모금됐다. 비율로만 보면 4분의 1 가량이 줄어든 셈이다.

딸 친구 살해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영학.[연합뉴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이영학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 사용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일부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투명히 운영되는 대다수 사회복지기관이 피해를 보는 중”이라고 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기부행위를 일절 그만뒀다는 직장인 한모(30ㆍ여) 씨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기부를 해왔지만 이젠 TV에서 이영학 얼굴만 봐도 죄책감이 든다”며 “내 기부금 중 일부가 흉악범의 범죄 행위에 쓰였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최근 한 아동보호기관으로 향하는 기부금을 끊었다는 직장인 주모(31) 씨는 “기부금을 보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졌다”며 “차라리 돈보다도 봉사활동을 더 많이 나갈 생각으로 앞으로도 가급적 기부는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모금 단체들도 신뢰받기 위한 노력을 좀 더 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감정호소에만 집중하는 수동적인 기부 장려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며 “기부단체들도 기부된 돈이 어떻게 도달돼 수혜자에게 어떤 상태의 변화를 일으키는지 알려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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