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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첫 수능연기] “금 간 시험장에 아들 못 보내” 공감 속 초조함 “3수하는 기분”
-수험생 “모두 일주일 여유생겨” 담담함도
-학부모 “휴대전화도 못 들고 가는데 여진 걱정”
-버린 참고서 다시 찾는 웃지못할 진풍경도

[헤럴드경제=원호연ㆍ김진원ㆍ정세희 기자]#. 문제집을 한아름 가슴에 안은 고3 학생들이 16일 아침 7시부터 하나둘 등교하기 시작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택시를 타고 온 세종과학고 학생 전모(19) 군은 “일주일 미룬 게 잘한 것 같다. 지진 나서 분위기 불안할 때 시험 보는 건 컨디션 문제도 있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원래대로라면 ‘수능 한파’가 됐을, 갑작스레 추워진 영하 3도의 날씨에 어깨는 잔뜩 웅크렸지만 전 군은 담담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학교 정문을 지났다.

16일 아침 세종과학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일주일 연기된 수능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등교하고 있다. [사진=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에 수능을 불과 12시간 앞두고 시험 일주일 연기가 전격 결정됐다. 포항 지역 수능시험장 10여곳에서 균열이 발견됐다. 16일 오전 9시 기준 여진과 본진 합쳐 43차례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해 경주 지진의 경우 여진이 46회 발생한 점도 고려됐다. 

많은 수험생들은 정부의 결정에 동감한다고 했다. 3학년 김은희(18) 양은 “일주일의 시간은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고3, 재수생에게 주어졌다. 조건이 똑같은 만큼 ‘멘탈’을 먼저 수습하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본다. 헷갈리는 개념을 차분히 되짚어 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미 버린 수험서들을 놓고는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여훈(19) 양은 “어제 밤 책 버린 친구들은 책 다시 구하려고 발을 동동 거렸다. EBS 강의에서 프린트를 뽑거나 급하게 책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했다.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광주시교육청 26지구 20시험장으로 지정됐던 광주 서구 화정동 광덕고등학교 정문이 16일 잠겨있다. 교육부는 경북 포항에서 지난 15일 발생한 지진으로 이날 치를 예정이었던 수능시험을 1주일 연기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15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포항고등학교에서 학교 관계자들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수능 연기 발표 방송을 보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일부 수험생은 빨리 봤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노량진에서 재수생활을 한 박현수(20) 군은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수능 보는 날만을 보고 지난 1년을 버텼는데 일주일이 더 늦춰졌다니 이번에는 3수를 하는 기분이고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다독이며 시간을 보냈다. 포항의 학부모 권기조(44ㆍ여) 씨는 “밤새 뜬눈으로 있었다. 바람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경주 지진 트라우마를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며 “수험생 부모로서 그나마 수능이 연기돼 다행이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만약 이대로 수능이 치러졌다면 불공평하다는 말들이 돌았다. 아이를 다독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재수생 아들을 둔 경기도의 학부모 김정채(46) 씨는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니 정부의 결정이 이해가 간다”며 “시험장에 휴대전화도 못 들고 가는 상황에서 금 간 시험장에 여진이라도 일어나면 아이들이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들 마음은 편하겠나. 나라면 금 간 시험장에 아들을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절대 쉽게 안 떨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뒤 주민들이 대피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서 한 고3 학생이 수능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날 아침 학원가에도 속속 재수생들이 출석했다. 메가스터디 관계자는 “평소 수강 인원의 80% 정도가 자습하러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면서 이어지는 수시ㆍ정시 일정 변경은 일부 불가피할 전망이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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