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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대학의 현실②] 강의마다 ‘조별과제’ 교수님은 어디에?…“등록금이 아까워요”
-조별과제 남발…듣고싶은 강의는 ‘마감’
- “등록금 내고 왜 우리가 강의하나” 비판
-“교수 부실한 강의계획서 볼 땐 회의감”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이모(25ㆍ여)씨는 대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명강의’가 손꼽을 정도로 적다. 학생들과 카페에 모여 팀플레이(조별과제)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처음엔 학생들의 참여로 구성되는 조별과제가 신선했지만 상당수의 강의가 학생발표로 채워지다 보니 수업의 질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 씨는 “아마추어 학생들의 수업을 듣자고 비싼 등록금을 내는 게 아닌데 대학 4년간 전문가인 교수의 질 높은 수업은 듣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연간 등록금 800만원 시대, 대학수업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13일 대학 정보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의 2017년 평균 등록금 공시자료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은 평균 370만으로 1년이면 약 80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대학교 수업다운 수업을 들어본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한 학기 대학 등록금 400만원 시대지만, 학생들은 “교수님들의 명강의는 찾아 보기 어렵고 원하는 수업은 모두 마감”이라며 “등록금에 비해 대학 수업의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토로한다. 사진 기사와 무관. [사진제공=123RF]

▶팀플 하려고 대학에 왔나 “회의감 들어”= 서울 서대문구의 4년제 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고 있는 최모(27) 씨는 빈 시간마다 조별 과제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며칠 전에도 마케팅 원론과 사례 발표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조원들과 회의를 했다. 마케팅 수업뿐만 아니라 통계학 등 4개 과목에 조별과제가 모두 있어 스케줄을 짜는 것도 일이다. 최 씨는 “만약 사설 학원에서 대부분의 수업을 학생 발표 수업으로 대체한다고 한다면 그 학원은 망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현재 대학교 수업은 학생 발표가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이 조별과제에 비판적인 이유는 단순이 과제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교수의 오랜 노하우가 담긴 질 높은 수업이 듣고 싶다고 희망했다. 국어국문학과 재학중인 대학교 2학년 한모(23ㆍ여) 씨는 “학생들의 참여가 더 효과적인 수업도 물론 있지만, 고전문학이나 국문법 등 전공 필수과목은 교수님의 강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기본적인 원론수업까지도 조를 나눠 발표로 채우는 것은 강의들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별과제로 얻을 게 많다면 기꺼이 열심히 참여하겠지만 일부 교수님들이 시간 때우기 식으로 조별과제를 남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시내 한 대학교 도서관의 풍경. [사진제공= 헤럴드경제DB]

실제 한국대학신문이 지난 10월 1203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학이 최우선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강의의 질적 향상’이 40%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강의 계획서도 없이 깜깜이 수강 신청…실패는 학생 몫= 한 학기 수업을 결정할 때 학생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교수님들이 작성한 강의 계획서다. 그러나 수강신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의계획서에는 강의명과 담당 교수, 목차만 있을 뿐 구체적인 수업 목표나 강의 방식 등은 빠진 경우가 많다고 학생들은 지적했다. 값비싼 수업료를 내면서도 자신이 어떤 수업을 들을지 모른 채 수강신청을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이다. 수강신청 정정기간에 강의를 바꾸려고 해도 이미 대부분의 강의가 마감이라 원하는 수업은 듣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최근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대학생 1384명을 대상으로 ‘2학기 수강신청’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수강신청을 완료한 대학생 중 26.6%가 수강신청에 실패했다. 수강신청에 실패한 대학생들은 그 이유로 수업의 수강 정원 자체가 적고(56.6%) 수강신청 시스템 서버가 불안정한데다 (34.6%), 수업의 양적ㆍ질적 문제로 학생들이 몇몇 수업에 몰리기 (30.7%) 때문이라고 답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원하는 수업을 듣는 일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수강신청 기간 듣고 싶은 강의를 듣기 위해서 PC방에 가거나 친구 노트북을 동원하는 일은 흔한 일이 됐다. 대학교 4학년 안현주(26) 씨는 “수강신청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면서 원하는 수업을 들으려고 애써온 게 사실이지만, 요즘엔 비싼 등록금을 내고 왜 그런 전쟁을 해야 했는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듣고 싶었던 교양수업이 있었지만 4학년이 돼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며 “대학교의 주인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학생들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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